왕후 vs 걸인

왕후 vs 걸인

[ 데스크창 ] 데스크창

김훈 기자 hkim@kidokongbo.com
2005년 08월 30일(화) 00:00
행복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저마다 느끼는 행복의 질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경제적으로 월등히 풍요로워졌는데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오히려 더 적어진 것 같다. 상대적인 박탈감과 소외감에 속상해 하고 더 큰 부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지 못하는 것에 조바심을 낸다. 소득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증거다.

미국의 1인당 GDP는 지난 50년간 3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반면에 우울증 비율은 10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높은 소득이 높은 효용으로 이어져 높은 수준의 소비와 더 다양한 선택권을 제공한다는 정통 경제이론과는 배치되는 결과이다.

물질적 부와 행복의 관계가 미약하거나 반비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이란 실제 소득과 기대치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데, 기대치가 실제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면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도 더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봉급이 크게 올랐어도 동료나 친구들에 비해 인상액이 적다면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일반화된 나머지 이로부터 더 이상 큰 즐거움이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가난한 신혼 부부였다. 남편은 실직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했다.
"어떻게든지 변통을 해서 점심을 지어 놓을 테니, 그때까지만 참으오"
출근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점심 시간이 되어서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보이지 않고, 방안에는 신문지로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王侯)의 밥, 걸인(乞人)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낯익은 남편의 글씨였다. 순간, 아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왕후가 된 것보다도 행복했다.

바둥대며 사는 생활이라 해도 사소한 일에 만족할 줄 알고 남을 위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다면 행복은 저절로 키워질 것이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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