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교회 유적지 '고려문' 발견

초기 교회 유적지 '고려문' 발견

[ 연재 ] <기고> 중국 내 한국기독교 역사현장 발굴(상)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5년 08월 09일(화) 00:00
교회 사학자이며 한국성지순례선교회 전문위원장인 김수진 목사가 지난 6월27일부터 4박5일간 중국 요령성 남부 봉황성을 돌면서 한국인이 중국에 들어가는 관문이었던 고려문의 터와 로스 선교사 기념비를 발굴했다. 이에 2회에 걸쳐 발굴 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를 싣는다. <편집자 註 designtimesp=31629>



   
당시 고려문의 모습.
한국교회에서는 고려문(高麗門;Koeran Gate)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고려문을 찾을 길이 없어서 어떤 이는 봉황성까지만 다녀왔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일면산(一面山;YI MIAN SHAN)역사를 보고와서 고려문을 보고 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글도 그렇게 쓴 일도 있었다. 왜 이렇게 고려문에 대해서 관심이 많을까.

이 고려문은 한국기독교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관계로 중국 땅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문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요즘 많이 생겨나지만 그 위치를 제대로 확인하고 온 사람들이 없어서 한국성지순례선교회(회장:박경진)의 전문위원장으로서 지난 6월 27일에서 7월 1일까지 전문위원 17인을 인솔하여 4박 5일 일정으로 고려문과 심양 동관한족교회 로스(J. Ross)선교사 기념비를 찾아 나섰다.

중국 심양에 도착한 일행들은 6월 28일 새벽 5시에 기상을 하고 곧바로 관광버스에 탑승, 고속도로로 4시간 정도 달려 봉황성 I. C. 진입로로 방향을 바꾸어 얼마동안 국도를 달리다가 봉황성 시내 도로변에 봉황성 한족교회가 붉은 벽돌로 잘 지어진 건물에 십자가가 우뚝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들 기뻐서 버스 안에서 "할렐루야"를 외쳤다.

   
고려 마을 전경.
봉황성한족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 요령성 남부 봉황성(鳳凰城)이란 곳에 '투카'라 부르는 지역에 있다. 봉황성에서 계속 서쪽으로 향하면 책문(柵門)으로서 우리나라 국경도시인 의주(義州)로부터 약 48킬로미터(1백20리) 지점에 있는 지역이다. 고려문은 한국인이 중국에 들어가는 관문(關門)이기도 하며, 이곳은 별정소(別定所)가 있어서 의주에서 관리 몇 사람이 파견되어 항시 주둔하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1966년 고려문을 철폐시키고 대신 1995년 변문진 비문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고려문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른바 중국 중앙정부 기관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의해 홍위병들이 고려문으로 인하여 훗날 한국과 국경문제로 논란을 일으킬 염려가 있어서 중국 당국에서는 1966년 이 고려문을 철폐시키고 그 대신 1995년 5월에 변문진(邊門鎭)비문을 세웠다. 높이가 1미터 70센티미터이며, 넓이는 70센티미터이다. 변문진 바로 밑에는 영어로 'Blarimen Zhen'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은 '1995年 5月'이란 글씨가 담겨져 있다. 이 연도로 보아 1995년 5월에 이곳에 세워졌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변문진은 일면산(一面山)역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으며, 철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철길 건널목을 막 건너면 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옆에는 옛 고려문의 흔적을 헐었던 돌무더기가 보기 흉하게 아무렇게나 쌓여져 있다. 변문진에서 북쪽은 한족(漢族)이 자리를 잡고 있는 마을이 있으며, 그 건너편에 있는 마을 아래는 넓은 들녘에 옥수수 밭으로 이루어진 곳이 있다. 바로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고려마을이라 부른 것으로 보아 고려문에 시장이 열리게 되면 그곳에서 상업과 농업을 겸하면서 살아왔었다는 사실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김수진 목사 <한국교회사학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