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놓는 세대, 1.5세

다리놓는 세대, 1.5세

[ 헬로티쳐 ] 장남기목사의 교육칼럼 헬로티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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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6월 14일(화) 00:00
어느 자리에선가 만난 미국 목사에게 한인교회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이민 온 한국 사람들의 세대(generation)를 구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민 당사자인 이민 1세와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들인 2세를 설명하고 나서, 이 사이에 한 세대가 더 있다고 하자, 아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 보며 귀를 기울였다. 바로 그 호기심의 대상이 1.5세였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만난 많은 1.5세가 있다. 그들은 1세와 2세 사이에 "다리를 놓는 세대이다." 이민 1세들의 과중한 기대치가 있었지만, 그것이 힘들다 마다하지 않고 이민 2세들을 위해 세대를 이어주는 믿음의 다리의 역할을 너무나 든든히 그들은 감당했다. 한국적 교회의 전통과 복음의 특성을 미국적 문화의 토양 속에 아름답게 뿌리내리도록 그들은 믿음의 구슬땀을 흘렸다. 그들은 사도바울의 표현처럼 먼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어 자라나는 2세들에게 "너희는 우리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교육적으로 이것을 반추해보자. 요즘 한국은 세대를 가르고 코드별로 나누고 성격과 기질, 그리고 체질에 따라서도 인간을 나누고, 그 구별에 따라 좋은 점 나쁜 점을 명시해 놓고 있다. 이렇게 한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을 나누는 것, 아니 좀더 좁게는 사회를, 가정을, 교회를 이렇게 해부하듯이 나누어서 얻는 이익이 무엇일까? 각 부분을 나누어 그 특징을 좀더 자세히 알 수는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부류에 속한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일도 일어난다.

이렇게 자르고 나누는 사고 방식이 교회 교육에도 적용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래서 교회학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교육은 언제나 아동 만을 대상으로 하고, 연령 별로 나누어, 학교처럼 큰 프로그램을 돌려야만 좋은 것으로 착각하는 맘모니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오늘날 교회의 가르침의 모습과 반대되는 가르침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모두 초청하셨고, 성별에 따른 차별, 지역에 의한 차별, 나이에 따른 세대 구분, 빈부에 따른 계층, 코드에 따른 배척을 뛰어 넘어 모두를 품으시고 변화시키는 가르침을 행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의 모형은 우리에게 교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교육에 집중해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의 교육현장에 필요한 사람은 찢어져 있고 나뉘어 있는 세대와 세대를, 사람과 사람을 묶어주고 연결해 줄 "다리를 놓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대단한 선각자가 아니어도 된다. 단지 예수의 복음과 그 분의 사랑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새벽을 깨우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할 사람이면 된다. "다리를 놓는 사람들"을 통해 코드별, 세대별, 성별의 차이를 인정하나 나누고 배척하는 것이 아닌, 통전적(holistic)이며 상호보완적으로 하나님의 형상 회복을 지향하는 운동력 있는 교회교육이 한국교회와 이민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美 찬양마을장로교회 담임 designtimesp=17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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