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국제학교의 우승과 디아스포라 코리안

교토국제학교의 우승과 디아스포라 코리안

[ 크리스찬,세계를보다 ] (8)

윤은주 박사
2024년 09월 02일(월) 00:45
지난 8월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일본 전국 고교야구대회에서 교토국제학교가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난 후 승리한 학교의 교가를 부르는 관례대로 선수들은 교가를 불렀고 이는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되는 교가였는데,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왜일까? 일본에서 유명한 고교야구대회에서 이례적으로 외국계, 그중에서도 한국계 학교가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아마도 일본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 코리안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담긴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재일동포 단체가 민족 교육을 위해 세운 '교토조선중'으로 출발했다. 1958년 '학교법인 교토한국학원'으로 재편해 한국 정부 인가를 받았고, 1963년엔 고등학교를 개교했다. 이어 2003년 '교토국제중·고교'로 교명을 바꿔 일본 정부에서도 정식 학교 인가를 받았다. 재학생은 현재 일본인이 65%인데, 야구단 구성에서 동포 3명을 제외하고 모두 일본인이다. 한인 교육을 위해 출범했던 학교가 국제학교를 지향하면서 일본인 비율이 높아졌지만 교가에 남아 있는 한글 가사가 학교의 정체성을 여전히 내포하고 있다.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삶의 형태는 대략 세 가지이다. 한국 국적을 택하고 외국인으로서 거주하거나,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둘 다 아닌 경우이다. 일본 당국은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있는 이들을 1947년 미군정 당시 편의상 만든 임시 국적인 '조선적(朝鮮籍)'으로 분류했다. 2023년 현재 재일 동포 가운데 대한민국 국적자는 41만여 명이고 조선적은 2만 4천여 명이다. 조선적 수는 2012년 40,617명에서 계속 줄어들었다. 이들은 해방 이후 분단된 조국 어느 한 편에 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북으로부터의 지원이 이어지면서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밀접한 관계가 굳어졌다.

현재 조총련 산하 학교로 알려진 조선학교는 해방 직후 후세에게 조선말을 가르쳐야 한다는 동포들의 열망으로 시작됐다. 조국으로 돌아가든, 일본에 남든 민족의 언어 회복은 한결같은 동포들의 관심사였고 '국어강습소'로 시작된 조선학교는, 유엔군최고사령부(GHQ) 군정과 일본 정부에 의해 한때 폐쇄되었다가 1950년대 중반 이후 재개됐다. 북한은 1957년부터 교육지원에 나섰지만, 한국 정부는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 조선학교 학부모 대다수가(95%) 남한 출신인데 자녀 교육을 위한 학교 운영에 이념과 남북관계가 큰 변수가 된 점은 아이러니이다. 남쪽이 고향이지만 조총련과의 연관성이 고향 방문조차 가로막기 때문이다.

조선학교는 조선적 인구 감소와 함께 줄어들어 2018년 기준 64개교, 7000여 명의 학생이 남았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수 감소와 조총련의 정치적 위상,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작동하는 가운데에서도 민족 교육의 기초인 한글과 문화 교육에 있어서 탁월한 성과를 내왔다. 3세, 4세로 내려갈수록 언어 교육이 쉽지 않은데 읽고 쓰기 교육 과정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 일본 조선학교 이야기를 다룬 영화 '우리학교'는 제3자의 눈에 비친 학교 일상을 잘 소개한다. 조선학교는 일본 전역에 유치·초급·중급·고급학교가 있고 대학은 동경에 조선대학교가 있다.

뒤늦게나마 조선학교 현실을 알게 된 한인들은 학교를 돕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다. 학교에 찾아가 학생들과 생활하며 영화를 제작하거나, '몽당연필'과 같은 사단법인을 만들어 국내에 조선학교 현실을 알리고 조선학교와의 직접 교류에 나선 것이다. 대북지원과 남북 민간교류 사업을 주로 하는 '남북어린이어깨동무'는 남과 북, 일본을 오가며 동포 자녀들의 미술 교류를 지원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뉴코리아는 동경 인근의 지바 현에 위치한 지바조선학교와 2010년부터 교류했지만, 남북관계 경색이 두드러진 2019년 이후 왕래하지 못하고 있다. 해묵은 이념 논쟁으로 민간차원의 오솔길 같은 교류 협력의 길마저 막힌 상황이다.

교토국제학교의 쾌거는 남·북·일 동포 모두의 자긍심을 높일만한 소식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일본 땅에서 민족의 얼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알기 때문이다. 조선학교는 2013년 아베 정부가 학교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으면서 더욱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있다. 국적자 수만 놓고 봐도 41만 대 2만 4천 명으로 기울어져 있는 재일동포 사회를 보며 이제 새롭운 성찰을 해야 할 때이다. 유엔 인권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사회권규약위원회 등은 이미 일본 정부를 향해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 조치를 철회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재일 디아스포라 코리안이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을 향해 함께 민족의 기상을 세워나가면 좋겠다.



윤은주 박사

(사)뉴코리아 대표·외교광장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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