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예배 ] 2024년 9월 11일 드리는 가정예배
임근묵 목사
2024년 09월 11일(수)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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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룻기 2장 1~4절
▶찬송 : 221장
우리의 매일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 많은 만남이 쌓여서 우리의 인생이 된다. 그래서 만남은 참으로 중요하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좋은 만남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지만 나쁜 만남은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만남'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처럼 우리의 바람 같기도 하고 운명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만남을 신비라고 표현한다. 그중 부부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스러울 뿐이다.
룻기 속에는 아름다운 만남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룻이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보리 베는 밭으로 가 이삭 줍기를 한다. 그런데 우연히 간 곳이 보아스의 밭이었다. 룻이 한참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곳에 보아스가 보리 베는 일꾼들을 둘러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두 사람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부부가 되고 가장 복된 가정을 세우게 된다. 어떻게 이런 만남이 이루어진 것일까?
성경은 그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4절의 '마침 보아스가...이르렀더라'를 원어로 하면 '그런데 보라! 보아스가...이르렀더라'로 번역된다. 마치 보아스가 알고 온 것처럼, 마치 누가 그때를 맞춰 보낸 것처럼 감탄할만한 타이밍에 그가 그곳에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하나님의 손길이 그를 그곳으로 이끌어 오셨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여러 군데 나온다.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하여 정처 없는 나그네로 미디안 우물가에 앉았을 때, 십보라가 거기에 나타났다. 또 아브라함의 종이 하란으로 이삭의 배우자를 찾으러 갔을 때 우물가에서 기도하자마자, 그때 리브가가 물동이를 들고 거기에 물 길러 나왔다. 야곱이 형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하여 갈 바를 몰라 우물가에서 서성일 그때, 라헬이 양 떼를 몰고 그곳에 왔다. 이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좀 더 노골적으로 말씀하신다. 하와의 손을 붙잡고 아담에게 오셔서 부부 되게 하신 이후로 모든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라고.
중요한 것은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아스와 룻은 그 만남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아버지뻘 되는 여리고 창녀를 어머니로 둔 보아스를 자기 남편으로, 이방 여인인 청상과부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가정에 복을 내려 주신다. 부부가 되자마자 아들을 주셨는데 그가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이다.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게 된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자손 중에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태어나시게 된다.
오늘 우리의 만남을 하나님께서 중매하신 만남으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완전하게 하시려고 짝지어 주셨음을 믿고 서로를 바라본다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부부의 가정을 통해 아름다운 자손들을 주시고 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게 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만남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정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근묵 목사/홍익교회
▶찬송 : 221장
우리의 매일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 많은 만남이 쌓여서 우리의 인생이 된다. 그래서 만남은 참으로 중요하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좋은 만남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지만 나쁜 만남은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만남'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처럼 우리의 바람 같기도 하고 운명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만남을 신비라고 표현한다. 그중 부부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스러울 뿐이다.
룻기 속에는 아름다운 만남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룻이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보리 베는 밭으로 가 이삭 줍기를 한다. 그런데 우연히 간 곳이 보아스의 밭이었다. 룻이 한참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그곳에 보아스가 보리 베는 일꾼들을 둘러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두 사람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부부가 되고 가장 복된 가정을 세우게 된다. 어떻게 이런 만남이 이루어진 것일까?
성경은 그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4절의 '마침 보아스가...이르렀더라'를 원어로 하면 '그런데 보라! 보아스가...이르렀더라'로 번역된다. 마치 보아스가 알고 온 것처럼, 마치 누가 그때를 맞춰 보낸 것처럼 감탄할만한 타이밍에 그가 그곳에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하나님의 손길이 그를 그곳으로 이끌어 오셨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여러 군데 나온다.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하여 정처 없는 나그네로 미디안 우물가에 앉았을 때, 십보라가 거기에 나타났다. 또 아브라함의 종이 하란으로 이삭의 배우자를 찾으러 갔을 때 우물가에서 기도하자마자, 그때 리브가가 물동이를 들고 거기에 물 길러 나왔다. 야곱이 형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하여 갈 바를 몰라 우물가에서 서성일 그때, 라헬이 양 떼를 몰고 그곳에 왔다. 이 모든 일들 속에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음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좀 더 노골적으로 말씀하신다. 하와의 손을 붙잡고 아담에게 오셔서 부부 되게 하신 이후로 모든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라고.
중요한 것은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아스와 룻은 그 만남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아버지뻘 되는 여리고 창녀를 어머니로 둔 보아스를 자기 남편으로, 이방 여인인 청상과부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가정에 복을 내려 주신다. 부부가 되자마자 아들을 주셨는데 그가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이다.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게 된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자손 중에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태어나시게 된다.
오늘 우리의 만남을 하나님께서 중매하신 만남으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완전하게 하시려고 짝지어 주셨음을 믿고 서로를 바라본다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부부의 가정을 통해 아름다운 자손들을 주시고 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게 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만남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정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근묵 목사/홍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