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9월 월례회, '야곱 DNA'

여전도회 9월 월례회, '야곱 DNA'

[ 여전도회 ] 2024년 9월 월례회

박병주 목사
2024년 09월 01일(일) 00:00
지난 7월 제89회 정기총회를 위한 준비기도회에서 기도하고 있는 여전도회원들./한국기독공보 DB
찬송 : 251장

성경 : 창세기 25장 21~28절

야곱의 일생은 끈질긴 집념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장자 상속권에 대한 집념,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한 집념, 하나님의 축복을 얻기 위한 집념. 이런 그의 모습은 좋게 보면 입지전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순리를 거스르는 집착과 불의의 인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는 필요하다면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형의 허기짐을 이용해 장자권을 사고, 눈 먼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축복을 받아내고 교묘한 방법으로 장인과 계약을 맺어 재산을 증식시키고, 귀향길에 형 에서를 대면할 시간이 되자 끊임없이 머리를 굴린다. 얍복강에서 특별한 체험을 통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거듭난 존재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하나님보다 자신을 의지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야곱의 인생을 꽤 심도있게 다룬다. 야곱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요,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야곱의 뒤틀린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과 그로 인해 변화되고 성숙해지는 야곱의 모습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거룩한 희망을 갖게 한다.

하나님은 야곱의 뒤틀린 집념을 일방적으로 단번에 바꾸지 않으셨다. 그의 죄의식을 부추기거나 정죄하지 않으셨다. 인격적으로 치유해 가셨다. 왜곡된 집념과 죄의식으로부터의 치유, 이것이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가신 이유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참된 해방을 주고자 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뒤틀린 본성이 변화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으셨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야곱을 조각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야곱의 이러한 DNA를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도 가졌다. 우리 또한 뒤틀린 의지와 현세적 집념을 갖고 하나님과 씨름하고, 서서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아간다.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 단번에 신자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옛사람의 길과 새 사람의 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도록, 인격적으로 안내하고 계신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사랑하기를 멈추고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야곱의 이야기를 우리 각자의 거울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야곱은 리브가와 이삭이 결혼한 지 20년 만에 얻은 아주 소중한 자녀였다. 이삭은 약속의 후손이었지만 현실은 자녀를 잉태하지 못하였기에, 이삭과 리브가는 크게 상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삭은 하나님께 간구한다. '하나님의 약속이 언젠가 이뤄지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문제를 방치해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갔다. 결국 이삭의 끈질긴 간구는 응답되어 리브가는 임신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리브가는 괴로워한다.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리브가 또한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응답을 받는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리브가는 해산의 날까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마음에 품는다.

마침내 해산의 날이 되었다. 온몸이 털투성이였던 첫 아이 '에서', 그리고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들고 나온 쌍둥이 동생 '야곱'이 태어난다. 우리는 흔히 야곱이 장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유대인들은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 유대인들의 전승 책(미드라쉬 아가다)은 야곱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온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에서가 야곱을 태어나지 못하도록 어머니의 태를 부수려고 했고, 이를 알아챈 야곱은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무사히 어머니의 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후 에서는 들판의 사냥꾼이 되어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받고, 야곱은 천막에 머물며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간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발견한다. 믿음과 기도의 사람이어도 누구나 만족하게 할 만큼, 충분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는 믿음의 가문이었어도, 자기 성향과 기호에 따라 자녀를 편애하는 부모로 살았던 것이다. 그들은 고통의 문제를 들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지만, 훗날 자식의 문제 앞에서는 결국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했던 것이다.

우리 각자가 가진 뒤틀린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 문제로 인하여 상처 혹은 죄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지',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겠지' 라는 무책임한 생각으로 방치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은 정죄하거나 죄의식을 부추기시는 분이 아니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뒤틀린 문제와 죄의식으로부터 치유와 해방을 허락해 주신다.

내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진정한 화해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 하나님 앞에서 나의 뒤틀린 문제, 나의 결핍, 나의 죄의식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의 뒤틀린 문제와 왜곡된 인생을 하나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조각해 주실 것이다. 그 은혜가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합심기도: 우리의 뒤틀린 문제와 죄의식으로부터 치유와 해방을 허락하소서. 주님의 시선으로 자녀들을 바라보며 주님께 의탁하게 하소서.



박병주 목사/송학대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