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교회들의 구호활동과 맥켄지가족

부산지역교회들의 구호활동과 맥켄지가족

[ 선교여성과교회 ] 경남지역 여전도회 20

탁지일 교수
2024년 08월 29일(목) 07:00
1953년 4월 24일 부산중앙교회에서 열린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제18회 연합대회.
맥켄지 선교사 가족.
한국전쟁으로 인해 부산을 찾은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사업들이 부산지역 교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선교초기에 세워진 이 지역의 교회들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을 구제하는 봉사의 삶을 통해 내적인 신앙의 성숙을 이루었다. 영남의 어머니교회인 부산진교회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온 기독교인들의 어머니 역할을 감당했으며, 영적인 보살핌과 아울러 피난살이에 찌든 가난한 사람들의 위로자로서 모든 교우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신앙공동체로서의 모습을 구현해 나갔다.

제일영도교회는, "전란의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본 교회와 교인들은 피난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보고 외면치 않았다. 교회당 주변에 몰려들어 거처를 삼는 피난민들을 마다하지 않고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었던 것이 당시 제일영도교회 교인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항서교회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예배당 및 교회 건물을 기독교인 혹은 비기독교인 피난민들을 위해 제공했다. 교회 유치원까지 문을 닫고, 이를 피난민들을 위한 거처로 사용했다. 피난민 구호로 인한 교회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여전도회는 기금을 마련했고 교인들은 특별 헌금을 했다. 많은 교인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피난민을 보호하기도 했다.

또한 대지교회 등 여러 부산지역 교회들의 형편도 다르지 않았다. 이미 수용능력을 초과할 만큼 밀려든 피난민들을 보호하고 돕기 위해, 부산지역의 많은 교회들은 헌신적으로 앞장섰다.

부산뿐만 아니라,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던 경남 거제의 내간교회, 유천교회 등도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사업을 전개했고, 월남한 목회자나 장로들이 시무하던 대부분의 거제지역의 교회들은 음식, 의류, 주택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한편, 어린이들의 교육에도 관심을 가졌다. 나아가 성경교육 과정으로 성경공부모임을 결성하고 성경통신학과를 설치하여 일반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일신기독병원 앞의 매혜란과 매혜영 선교사.
#맥켄지가족과 일신기독병원

한국전쟁 당시 부산지역 기독교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바로 호주선교사들에 의한 일신기독병원의 설립이다. 일신병원의 설립은 호주에서 온 맥켄지 가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일신기독병원의 설립자인 헬렌 맥켄지(Helen P. Mackenzie, 1913~2009, 한국명 매혜란)와 동생 캐서린 맥켄지(Catherine M. Mackenzie, 1915~2005, 한국명 매혜영)는 호주선교사 제임스 맥켄지(James N. Mackenzie, 1865~1956, 한국명 매견시)의 장녀와 차녀이다.

제임스 맥켄지의 묘비에는 '나환자들의 친구(Friend of Korean Lepers)'라는 한 줄만이 적혀져 있는데, 이는 1912년부터 1938년까지 사반세기 동안 부산나병원과 상애원을 운영하면서 한센환자들의 치료와 안식에 헌신한 그의 선교를 간단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 맥켄지의 딸들로 부산에서 태어난 헬렌과 캐서린은 아버지의 선교사역을 통해 의료선교사의 꿈을 키웠다. 1931년 호주로 간 자매는 의학을 전공하고, 각각 산부인과 전문의와 간호사가 되어, 한국전쟁의 피난지가 되어버린 1952년 2월 13일 그들의 고향 부산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부산에서 활동하던 구호단체들은 헬렌과 캐서린 같은 의료인들보다 자금과 인력을 필요로 했다. 결국,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산모와 영아들을 위해, 자매는 병원을 설립하기로 한다.

헬렌과 캐서린 맥켄지 자매는 1952년 9월 17일 부산 좌천동에 일신부인병원을 설립하고, 그 설립목적을 "본 병원은 그리스도의 명령과 본을 따라 그 정신으로 운영하며, 불우한 여성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육체적 고통을 덜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봉사와 박애정신을 구현한다."라고 밝힌다.

1962년 3월 14일 저녁 7시 북성교회에서 모인 제72회 경남노회 '일신 부인병원 이사 보고'를 통해 그 성장과 영향력을 볼 수 있다.

"1960년은 환자 매일 평균 9명의 증가로 일년간 연인원 3179명이며, 영아병으로 663명이 치료받았읍니다. 영아부는 매일 90명씩 증가로 약을 주었으며, 영양실조증 아에게 우유를 배급하였는데, 그 연수는 일년간 807명에게 달하였읍니다. 신사업으로 아동구호재단에 영아부를 두고 돌보고 있읍니다."

1976년까지 헌신적인 의료선교를 진행한 헬렌 맥켄지는, 은퇴 직전에는 호주 전역을 돌며 환자 무료진료를 위한 기금(The Mackenzie Foundation)을 마련했고, 이를 병원에 맡겨 '예수 정신'으로 의료선교를 지속해 줄 것을 당부한 후 호주로 돌아간다.

일신기독병원의 설립자인 맥켄지 가족은 모두 하나님 품에 안겼지만, 이들의 숭고한 의료선교 정신을 아직도 일신기독병원의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어려움을 겪던 부산여성들과 피난여성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한 맥켄지 자매의 삶과 사역은, 부산지역 기독여성역사의 소중한 한 장을 장식하고 있다.

탁지일 교수 / 부산노회여전도회연합회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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