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사역 변화, 제자 사역지 방문

코로나로 사역 변화, 제자 사역지 방문

[ 땅끝편지 ] 카자흐스탄 방승수 선교사 ⑥

방승수 선교사
2024년 08월 14일(수) 14:38
리자의 사역지.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필자 역시 코로나에 감염돼 생명이 위독할 때 한국 성도들의 기도로 살아날 수 있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의 찬양이 필자에게는 실제가 되어 기도의 능력을 경험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곧 필자의 고백이 됐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이다.'

필자의 사역지인 카자흐스탄은 코로나19 초기 장갑차로 도시 전체를 봉쇄했고 군인과 경찰들이 통제하면서 이동을 제한했다. 코로나19가 완화되면서 필자는 제자들의 사역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첫 방문지는 알마티에서 약 60km 떨어진 리 엘리자베타(Lee Elizabeta·리자)의 사역지였다. 리자의 두 아들은 모두 한국에 근로자로 나가 있었다. 리자는 외롭게 남은 며느리들과 예배를 시작했다. 그 예배는 지역민 5000명 이상이 모이는 지역의 첫 예배였다. 주일에는 이웃을 초청해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면서 복음을 소개했다. 그리고 자신이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접 지역으로 나가 전도했다. 코로나 때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면서 이웃에게로 다가갔다.

코로나가 끝나갈 즈음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코로나 이전에 10여 명이 모였지만 코로나 후 20명 이상이 모였다. 리자는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정식교회 등록을 기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2021년 6월 신학교를 졸업한 후 바라고 기도하던 교회 등록을 준비하던 리자는 안타깝게도 그해 10월 코로나에 희생되고 말았다. 잘 자라던 복음의 나무가 코로나라는 태풍을 만나 한순간에 꺾여버렸다.

그러나 얼마 후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복음의 나무는 단지 꺾였을 뿐이고 뿌리째 뽑힌 것이 아니었다. 고려인이었던 시어머니가 뿌린 복음이 이슬람 배경에서 성장한 둘째 우즈벡 며느리에게로 흘러 들어가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둘째 며느리집에서 20~30명이 모여 예배하고 있다. 뽑힌 것이 아니라 부러졌을 뿐이다. 복음의 나무는 다시 새롭게 자라고 있었다.

아브두레쉿의 집에 방문한 방승수 선교사.
다음 방문지는 C국 국경 근처 위구르 지역에서 사역하는 아브두레쉿(Abdureshit)의 사역지였다. 위구르인인 그는 학교에 올 때 늘 폐차 직전의 낡은 차를 끌고 왔다. 강의실 맨 구석에 앉아 열심히 노트 필기만 하는 학생이었다. 위구르 민족의 종교는 이슬람이다. 그런 그가 복음을 만나 5명의 가족과 예배를 시작했고 지금은 4개 지역을 순회하며 사역하는 사역자가 되었다. 그 낡은 차로 멀리는 110km까지 이동하며 4개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17~18명이었던 예배 인원이 코로나 이후 약 30명으로 성장했다.

처음 그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형편이 말도 아니었다. 예배 처소인 거실의 천장과 벽지는 다 떨어져서 너덜거렸다. 유리창은 깨져 있고 설교대로 사용한다는 탁자는 직접 만들었는지 흔들거리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아직 완역되지 않은 위구르어 성경과 복사돼 묶여 있는 위구르어 찬송가가 놓여 있었다. 이후 몇 차례 더 방문하면서 함께 기도하고 협력해 조금씩 예배실다운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최근 방문했을 때는 4개 지역의 모임이 더 성장하여 40~45명이 예배하고 있다는 복된 소식을 접했다.

방승수 선교사 / 카자흐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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