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시련...세계사적 소명 감당 위한 훈련일지도

민족의 시련...세계사적 소명 감당 위한 훈련일지도

[ 크리스찬,세계를보다 ] (4)코리아의 운명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4년 08월 05일(월) 00:03
1897년 대한제국 선포는 근대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한편, 조선이 중국과 맺어왔던 사대관계로부터의 독립을 뜻했다. 그러나 1910년 한일 합병 조약 체결로 12년 만에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미국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기세 좋게 대한제국을 손에 넣었다.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의 군정이 시작되면서 남과 북은 새로운 시련 앞에 놓였다. 남북은 민족상잔에 이어 서로를 증오하며 부정하느라 너무 많은 세월을 흘려보냈다. 다시금 새로워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코리아의 역사적 소명이 무엇인지 깨닫고 협력하기에도 바쁜데 말이다.

남북관계는 처음부터 국제 정세 속에서 시작됐다. 미 군정하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와 소련 군정을 힘입어 등장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은 각기 반공산주의와 반자본주의 이념을 국내 정치에 고스란히 체화시켰다. 남북 모두 사상의 자유는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는데, 남북의 분단선이 국제 체제의 대(大) 분단선과 겹친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이념 대결의 종식을 선언한 탈냉전 시대가 되자 북은 남쪽이 내민 손을 잡으면서 우호적인 관계가 형성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북 분단선은 대 분단선과 함께 해체되지 못했다. 다른 사회주의 국과 같이 북한 체제가 곧 붕괴할 것으로 믿었던 남한 당국은 소극적 대응만 했다.

독일통일을 지켜본 북한은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을 우려했고, 기존의 주장을 굽히면서 유엔에 가입했다. 국시처럼 여겼던 통일보다 체제 안보가 우선인 상황이었다.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기본합의서를 체결한 남과 북은 적대관계를 청산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남과 북이 독립된 국가임을 표방했고,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불가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적 냉전 체제가 해체되는 와중에도 남북 합의만으로는 한반도의 분단구조를 해소할 수 없었다. 1992년 북한이 미국과의 국교 수립을 타진했을 때 남북이 공동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남북기본합의서 체결만 아니라 한국전쟁 문제를 마무리했어야 했다.

당시 북한은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지 않는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쟁 이후 중국의 내정간섭을 경험했던 북한은 미국의 힘으로 중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기에 '위장 평화 공세'가 아니었다. 북미 접촉은 열매 없이 끝났고 북한은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제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북한의 핵 문제는 북미 관계에서 불거진 문제이다. 우리가 소련, 중국과 수교하면서 북한이 미국, 일본과 수교했다면 안보 불안증에 빠져있던 북한으로서는 안전망을 얻는 격이었다. 이후 북한은 30년 넘게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벼랑끝외교'를 구사했고 2017년 11월 핵 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1993년 처음 발생한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은 국제사회 속에서 맞물려 있는 남북관계의 가능성과 한계를 확인해 준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첨예한 갈등 속에서 제3차 북핵 위기가 증폭됐다. 다 아는 바와 같이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시작됐고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 싱가포르에서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됐다. 9월에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됐고 9.19 군사합의가 나왔다. 한반도 평화의 완성이 바로 코앞에 놓인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불발로 끝나면서 남북관계까지도 땅에 떨어졌다.

근대의 문이 열리자 한반도를 강타했던 국제화 물결은 코리아의 운명을 가늠케 한다. 대한제국의 황실은 무력했고 몇몇 가문이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지켰지만, 민초(民草)들의 삶은 애달프기 그지없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 역작이다.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AI로 대표되는 과학혁명 시대가 이미 시작됐고, 한반도에는 다시금 대륙과 해양 세력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이 함께 사는 길을 다시 걷고,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로 걷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시련은 아마도 세계사적 소명을 감당하기 위한 훈련인지 모른다.



윤은주 박사

(사)뉴코리아 대표·외교광장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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