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만 오천달러를 후원받아야 합니다"

"매년 이만 오천달러를 후원받아야 합니다"

[ 독자투고 ] 여전도회 10년 후원 종료하며 감사 마음 전달

김명환·권선종
2024년 06월 17일(월) 15:59
비르멘스도르프 부임설교.
"매년 2만 5000달러를 후원받아야 합니다."

2013년 총회의 추천으로 스위스 선교사로 파송 받은 후, 교회들로부터 전달받은 소식이었다. 취리히와 베른과 바젤, 스위스 독일어권의 세 도시를 순회하는 사역이었다. 세 개의 공동체가 있지만, 모두 합쳐도 자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파송 조건에도 매년 만 달러 후원이라는 조건이 있었지만, 파송 결정 후 조건이 달라졌다. 스위스 체류허가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체류허가를 받기 어렵다. 심지어 어학 비자조차 발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1977년 처음 한인교회가 세워졌지만 무려 15년간 목회자 없이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1992년 이후 스위스 개신교연맹과 에큐메니칼 협력을 통해 두 명의 선교사가 파송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소중하고 특별한 사역지가 아닐 수 없다.

후원을 위해 50여 교회를 방문했지만, 스위스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이유조차 이해하는 교회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옥합선교회의 후원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권선종 선교사가 여성 신학자로서 2007년 스위스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 되었을 때 여전도회로부터 여비를 지원받았기에 우리에게는 의미가 큰 후원이었다.

스위스 취리히 그로스뮌스터(최초의 개혁교회), 목사 안수식 기념사진.


6년의 임기를 마친 2020년 스위스에도 코로나 광풍이 불어 닥쳤다.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주셨다. "너희는 그 곳에 집을 짓고 정착하여라. 과수원도 만들고 그 열매도 따 먹어라."(29:5) 우리는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 목사로서 스위스 현지인 사역자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애초에 환영받을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스위스는 독일과 더불어 종교개혁과 개신교 종주국이다. 그것도 개혁교회(장로교회)가 시작된 곳이 아닌가! 찾아가는 기관마다 난색을 표하며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했다. 한 목사님이 우리의 서류를 받아주었지만, 6개월 이상 그저 책상 위에 방치되기도 했다. 끊임없는 두드림 끝에 취리히 주교회는 우리를 위한 위원회를 열었다. 스위스 개혁교회 사역을 위한 3년의 훈련과정이 우리에게 요구했다. 바늘구멍만한 기회가 생겼다.

아무도 걸어본 길이 없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누구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롯이 그 길을 걸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3년간 실낱 같은 소망을 품고 어두컴컴한 터널을 걸어야 했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이 혹독한 훈련 후에 과연 우리가 사역지를 구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미지수였다. 한인 사역으로 영적인 고갈된 상태였다. 경제적인 궁핍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언어적, 문화적 한계를 뛰어 넘고, 차별의 유리벽을 경험하는 일도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우리가 경험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사람들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우리들을 위해, 지푸라기만큼 조그만 가능성을 믿어주고 용기를 주며 기도해주는 여전도회의 변함없는 선교 후원이었다.

아폴턴 암 알비스 성탄예배 성찬.
2023년 8월, 개혁교회의 어머니 교회인 취리히 그로스뮌스터에서 목사 안수식이 있었다. 츠빙글리가 말씀을 선포하던 바로 그곳에서 권선종 선교사가 한국 여성 최초로 스위스 개혁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안수식 마지막 순서로 권선종 선교사의 한국어 축도가 울려 퍼졌다.

2024년 9월 1일, 권선종 선교사가 취리히 비르멘스도르프의 선출직 목사로 취임한다. 이제 진짜 사역이 시작된다. 예배 출석률 1%, 잠들어있는 유럽의 어머니 교회들은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 여기에 한국 교회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다. 벌써 6월에 K-문화를 통한 워쉽 콘서트, 음식 잔치, 어린이 인형극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이 땅에 다시 복음의 씨앗을 뿌리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으시고, 준비시키셨다.

여전도회 옥합선교회의 후원을 받은 지 10년이 지났다. 이곳에 자리를 잡기까지 함께 걸어왔던 여전도회에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제 이번 달로 선교후원이 종료된다.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자녀의 심정으로 우리의 상실감을 표현해야 겠다. 어른이 되어도 힘이 필요한 경우 젖 먹던 힘까지 짜낸다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힘이 필요하다면 언제나 여전도회로부터 받은 풍성하고 조건 없는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아울러 최초의 스위스 현지인 선교, 우리 어머니 교회를 섬기는 새로운 사역에 한국 교회의 적극적인 협력과 새로운 후원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김명환·권선종 / 총회 파송 스위스 선교사

권선종 선교사와 김명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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