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동편여전도회, 목적 설명하니 모이는 회원들

경남동편여전도회, 목적 설명하니 모이는 회원들

[ 선교여성과교회 ] 경남지역 여전도회 10

탁지일 교수
2024년 06월 06일(목) 15:51
1918년 9월 경남동편여전도회 설립을 위한 발기회가 조직된 후 제2회 발기회 모임이 11월 28일 오후 4시 양산읍예배당에서 열렸다. 회장 한동년의 기도로 개회한 이날 회의에는 정순애, 서찬의, 김갑순, 송순화, 김필선, 신필례, 박정숙 등 8명이 참석했다. 서기의 전회의록 낭독과 회계보고 후에 회장 서찬의, 서기 김갑순, 회계 한동년, 재무에 함열 목사가 선출됐다.

경남동편여전도회 설립을 위한 발기인이 19명 그리고 찬성하여 동참하는 수가 90명이었다. 이후 강재선과 양주의 두 전도부인의 노력으로 회원 수가 470여 명에 이르고, 회비도 440원 2전 5리에 이른다.

또한 이날 모임에서는 경남동편여전도회를 설립하기로 하고, 이후에도 발기회를 해산하지 않고 계속 남아 여전도회총회를 후원하자는 한동년의 동의가 받아들여져, 발기회는 이후 총회 후원조직으로 지속됐다.

1919년에는 삼일운동으로 인해 여전도회 모임이 일제의 주목을 받았다. 일제는 여전도회 모임을 애국부인회 성격의 단체로 생각하고, 한동년과 정순애를 취조하고, 40일간 구류하기도 했다.



# 신입회원 적극 모집

경남동편여전도회 설립을 위한 발기회 모임을 통해 여전도회의 외연 확대가 구체화됐다. 제3회 발기회 모임이 1920년 3월 2일 오전 9시 밀양읍예배당에서 개최됐고, 제3회 모임이 1921년 12월 30일 오후 2시에 부산진일신여학교에서 회집했다.

특히 제4회 발기회 모임에서는 신입회원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동년은 이날 참석한 권기근, 김봉희, 이백가, 정봉식, 김원래, 김의은, 김신식, 백차연, 김봉리, 박득술, 김기숙, 문복숙, 조현우, 김모연 등의 신입회원들에게 여전도회의 목적을 설명하고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회원모집을 노력이 점차 결실을 맺었다. 1922년 3월 8일 오후 3시 수영로예배당에서 모인 제5회 발기회 모임에는 회원 20명과 신입회원 30명이 참여했다. 이후 제6회 모임이 1923년 1월 2일 오후 3시에 부산진예배당에서 출석 18명, 결석 63명으로 개최했다.

1924년 2월 16일 오전 11시 마산 문창예배당에서 모인 제7회 발기회 모임에는 회원 33명과 신입회원 18명 등 51명이 회집했다. 이날 회의에서 신입회원모집을 담당한 한동년은, 여전도회에서 자신을 파송한 1923년 7월 19일 이후, 마산교회에서 발기인 33명과 찬성인 15명을 모집했다고 보고했다.

또한 이날 회의에선 발기회의 목적이 여전도회 총회 사업을 후원하기 위한 것임을 다시 분명히 한다. 또한, 신입회원 모집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참여가 저조한 회원들을 권면하기 위해 각 지방 전도인들을 권장위원으로 선정하는데, 동편에는 손마르다와 라주의를 서편에는 김태연과 김은혜를 파송하기로 결의했다.

제8회 발기회는 1925년 2월 3일 오전 10시에 김해읍예배당에서 모였다. 이날 회원점명에는 출석 38명, 결석 193명, 사망 2명으로 나타나있다. 사업부 모집위원 양주이의 보고에 따르면, 1924년 8월 20일부터 김해와 웅천 전 지역을 순회하여 96명의 신입회원을 모집했다. 여전도회 총회에서도 여전도회의 취지를 설명한 후 아래 신입회원들의 등록을 받았다.

부산부 영도교회 김숙덕 정금이, 울산군 봉운교회 리필선, 창원군 마천교회 리장동, 울산전읍교회 김헤수, 동래두구동교회 선순이, 양산읍교회, 배순이, 마산교회 허말순 박또악 박셩금, 김해읍교회 김장수 구상읍 박덕수 정두임 설광명 오복경 박봉선 김태년 안제섭 황성기 김봉순 박선이 김조이, 함천교회 김도화, 칠산교회 김어진, 가락교회 리복니.

회원모집을 위한 노력은 이후 계속되고, 1926년 2월 30일 오전 10시에 동래읍예배당에서의 제9회 발기회에는 참석 32명, 결석 436명이었고, 1927년 2월 15일 오후 8시 영선정교회(현 초량교회)에서의 제10회 발기회에는 출석 21명, 결석 455명이었다.

'죠션예수교쟝로회경남로회여전도총회사긔'와 '경남동편녀전도총회발기회록'에는 1918년 영주동예배당에서의 경남동편여전도회 설립을 위한 발기회 조직으로부터, 1927년 영선정교회에서의 제10회 발기회 모임까지의 내용이 기록돼 있다.



# 1918년 제1회 총회 개최

1918년 봄 부산진교회의 사경회가 개최되었을 때 한동년 등의 주도로 부산진교회와 동래읍교회 여성들이 연합하여 여전도회를 조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회장에 한동년 그리고 서기에 정순애를 선출한 후, 그 자리에서 백여 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1918년 9월 7일 부산 영주동예배당에서 경남동편여전도회 설립을 위한 발기회가 조직된 후, 동년 11월 30일 오전 10시에 양산읍예배당에서 경남동편 여전도회 제1회 총회가 정덕생 목사의 기도로 개회했다.

여전도회의 설립 취지를 설명한 후, 한동년의 동의로 정덕생 목사가 임시회장이 되고, 김필선의 동의로 임시서기에는 정순애가 선출됐다. 이어 호주 빅토리아주 여전도회에서 보낸 축하의 글을 호주선교사 함열 목사가 낭독했다.

참석회원은 22명이었고, 발기인은 19명, 찬성원은 90명이었다. 회의에서는 임시회장이 규칙을 낭독했고, 미진한 부분이 있으나 임시로 사용하기로 정순애의 동의로 가결한 후 잠시 정회했다.

오후 2시에 정순애의 기도로 다시 속회한 총회에서 임원을 선출했는데, 회장 한동년, 서기 정순애, 회계 박봉도, 재무 정덕생 목사가 피선됐고, 규칙이 가결됐다. 또한 각 지회 조직에 대한 보고가 있었는데, 부산진교회 40명, 동래읍교회 20명, 두고동교회 9명이었다.

한편 이날 설립 총회에서는 여전도인을 파송하자는 전도국위원의 보고를 받고, 복음전도가 필요한 지역을 정해 여전도인을 파송하는 것과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을 도와 교회부흥을 모색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여전도회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급선무인 점에 의견을 모으고 속히 실행하기로 했다.

탁지일 교수 / 부산노회여전도회연합회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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