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같은 정과 마음으로 품었던 스승"

"바다 같은 정과 마음으로 품었던 스승"

제자가 회고하는 청해(靑海) 정장복 박사의 신학과 삶

김수중 교수
2024년 02월 20일(화) 20:44
때 이른 봄기운이 마치 바다 물결처럼 대지를 푸르게 덮어오던 2024년 '재의 수요일', 오직 '성언운반일념(聖言運搬一念)'으로 살아온 신학의 거목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사순절의 첫날에 성도들이 회개하며 외우던 말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하신 대로 육신이 흙으로 돌아간 그분의 이름은 청해 정장복이다.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청산도에서 교회 종을 치며 자라난 소년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겠다는 사명을 지닌 채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학업에 전념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예배와 설교 분야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이후 한일장신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하며 학문과 교육의 길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겨운 육신을 쉬게 하시고, 십자가를 묵상하는 회개의 절기에 그 아름답고 맑은 영혼을 영원한 천국으로 이끄셨다.

청해의 신학은 교회의 역할과 시대의 문제를 바탕에 두고 출발한다. 그는 신학이 전통적인 이론의 틀이나 굴레에 갇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염려하면서 활력에 넘치고 활성화된 실천신학을 추구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예배와 설교가 형식화되어가는 것을 막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방편을 청해다운 방식으로 모색해 갔다. 먼저 수많은 논리와 주장들을 번역하여 기존의 성과를 소개한 후, 이를 한국교회의 현장에 적용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의 해석과 적용은 참신하면서도 무리함이 없다. 이 이론을 적용할 대상인 교회와 시대를 먼저 통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그의 저술 분량은 예배와 설교 분야의 개론서로부터 신학서, 사전, 그리고 40년 이상 매년 발간한 '예배와 설교 핸드북'을 포함하여 일백 권이 훨씬 넘는 성과를 냈다. 그는 학계가 공인하는 실천신학 최고의 학자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신학 시절 정장복 교수실의 연구원으로서 매일 그분의 집필 현장에 함께하는 기회를 얻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필자에게 맨 먼저 지난밤 집필한 원고지 묶음을 전하셨다. 그때는 원고용지에 펜으로 직접 쓰던 시절인지라 나는 스승의 하루 성과를 원고지 숫자로 계산하여 평가하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청해 스승님은 하룻밤에 20매 이상을 쓰는 능력을 보이셨는데, 어느 날은 조용히 두 장의 용지를 내미셨다. 학교에 어려운 일이 많은 시기였으므로 연구에 몰두하기 힘든 시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날도 두 장의 글을 이어간 스승의 모습이 내게 감동을 불러왔다. 그래서 필자는 청해 스승을 따라 40년 이상 '핸드북'을 공동집필해 올 수 있었다. 비록 어려운 조건에 처할지라도 학자의 길을 걷는 동안 나도 하루에 최소 400자 이상의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런 스승의 감수를 받을 수 없게 되었음이 안타깝다. 그분은 시인이시며 문학적인 글을 쓰는 데도 조예가 깊으셨다. 청해의 설교문과 수필들은 살아있는 생생한 언어의 조합이다.

청해의 삶은 이러한 학문적 성격을 그대로 닮았다. 소년 시절 가슴에 품은 푸른 바다는 그분이 헤쳐나갈 인생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바다 같은 정을 주며 마음으로 품는 삶을 사셨다. 그렇지만 그 사랑은 표면에 철저한 엄격함을 표방한다. 청해 스승의 진정한 속마음을 모른다면 자칫 너무 엄준한 분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청해 사단'이라 일컬을 만큼 많은 수의 제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그 엄격함의 너머에 있는 스승의 진실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 고비를 넘으면 평생 떠날 수 없도록 따뜻한 인간적 매력을 지닌 인격체가 곧 청해 정장복 박사이심을 공감하게 된다. 청해 스승님의 삶과 학문이 이 시대의 교회와 신학이 나아갈 길을 인도하는 지표가 되었음을 확신하며, 남아있는 우리도 '성언운반일념'의 뜻을 따르기 원한다. 하나님의 위로가 유족과 신학도들과 한국교회 위에 내리시기를 기도드린다.



김수중 교수 / 조선대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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