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겔 18:25-32)

공평하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겔 18:25-32)

[ 설교를위한성서읽기 ] 13

강성열 교수
2021년 11월 11일(목) 22:14
공평하신 하나님께 돌아오라(겔 18:25~32)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시기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스겔(히브리어로는 '예헤즈켈')은 제사장 부시의 아들이요 현직 제사장으로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주전 597년에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여호야긴 왕(주전 598~597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을 때(제1차 바벨론 포로)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과 함께 포로가 된 사람이었다(왕하 24:10~17). 그는 제사장이면서 포로기의 첫 예언자로서 포로기 이전의 예언 운동과 포로기 이후의 유대교를 연결 짓고 있다는 점에서 흔히 유대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에스겔 1:1~3에 의하면, 그는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지 5년째 되던 해, 곧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해인 주전 593년 4월 5일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으며, 포로가 된 지 27년째인 주전 571년 1월 1일에 이르기까지 예언 활동을 했다(겔 29:17).

에스겔은 이미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족속을 상대로 파수꾼 역할을 수행하라는 사명을 받았었다(3:16~17; 33:2, 7). 그에게 이처럼 파수꾼의 사명이 주어진 것은, 당시에 델아빕(Tel~abib)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사람들(3:15)이나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자들이 자기들에게 닥친 재난,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자기들의 죄악에 대한 벌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그러한 재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조상들의 잘못 때문에 그 벌을 자기들이 대신 받는다고 생각했다(18:19; 참조. 출 20:5; 34:7). 그런가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방법이 공평하지 않다거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 불평하기까지 했다(18:25, 29; 33:17; 참조. 9:9~10).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두고 볼 때, 하나님의 방법이 공평하지 못하다거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야웨께서는 버려진 아이와도 같은 이스라엘(16:4~5)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그의 긍휼하심에 근거하여 그들을 자기 자녀로 입양하여 친자식처럼 돌보아 주시고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러한 구원 은총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죽음의 위기로부터 건짐 받았을 뿐만 아니라, 들의 풀처럼 왕성하게 자라나 그의 아내가 될 정도의 어엿한 처녀로 장성할 수 있었다(16:6~7).

더 나아가서 야웨께서는 아직 벌거벗은 채로 있던 이스라엘과 결혼 언약을 맺고서 그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시고(16:8; 23:4), 신부로서 갖추어야 할 온갖 장식품들과 결혼 예복 및 양식 등을 제공해 주시기까지 했다(16:9~14). 시내 산에서 주어진 각종 계명들이나 이스라엘 자손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 또는 사사들을 통한 구원 등의 모든 역사적인 경험들이 그 점을 뒷받침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항상 최선의 것을 마련해 주셨지만, 유다 백성을 포함한 이스라엘은 항상 아내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성실하게 응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회~정치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차원과 외교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온통 하나님을 떠나 음행에 몰두하는 창기 내지는 간음녀의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스라엘이 공평하지 않은 것이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지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유다 백성(2:3~4)의 그처럼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셨다. 그가 선포한 예언 메시지에 의하면, 어떤 의인이 자신이 계속 행하던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을 경우, 그는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지만, 그 반대로 어떤 악인이 그동안 행하던 악을 떠나 정의('미슈파트')와 공의('츠다카')를 행할 경우, 그는 그 정의와 공의로 인하여 틀림없이 자기 생명('네페쉬')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18:26~28).

이에 더하여 에스겔은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의 악한 길에서 방향을 돌이키도록('슈브') 설교한다. 그들이 범한 죄가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라"는 메시지나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렙')과 영('루아흐')을 새롭게 하라"는 메시지(18:30~31)가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바로 이 메시지야말로 그가 수행해야 할 파수꾼 역할의 본질적인 내용이다.

만일에 그가 악인(또는 유다 백성)에게 심판을 선고했을 경우, 그 악인은 자신의 행동 변화에 따라 판단을 받고 에스겔 자신도 책임을 면할 것이지만, 악인을 깨우치지 않음으로써 그가 멸망할 경우에는 에스겔 자신도 그 죗값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의인이 그 의에서 떠나 악을 행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며(3:17~21),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민족 공동체 전체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33:1~7).

그렇다면 에스겔은 왜 이처럼 위험스러운 파수꾼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는가? 이것은 하나님이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18:32; 33:11). 그 까닭에 에스겔은 하나님을 떠난 유다 백성의 죄악을 지적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설 것을 촉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강성열 교수 / 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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