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부인전도회의 조직과 연합활동

부산지역 부인전도회의 조직과 연합활동

[ 선교여성과교회 ] 경남지역 여전도회 7

탁지일 교수
2024년 04월 25일(목) 17:01
호주선교사들의 도움과 함께 부산지역의 초기 교회들은 교회의 체계와 신앙을 확립해 나아 가기 시작한다.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된 예배, 세례교육, 주일학교, 순회전도 등이 점차로 자리를 잡아갔고, 벨 멘지스 선교사는 부산진교회에서 연례사경회(annual Bible schools)와 소녀들을 위한 주중 공부반(a midweek class)을 운영했다. 특히 사경회는 부산지역 각 교회 여전도회 설립의 밑거름이 된다.

# 교회 조직의 체계화

1904년 당회가 설립된 후, 부산진교회는 조직교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세례자의 선정에 있어서도 신중을 기하고, 신앙생활에서 벗어나는 이들에게는 엄격한 치리를 행하는 한편, 사무위원, 영수, 대리영수 등을 세워 교회 조직을 체계화하고, 안으로는 수요기도회를 정례화 하고, 밖으로는 교회연합 행사를 추진했다.

이후 1914년 제임스 맥켄지(James Noble Mackenzie, 1865-1956) 선교사가 당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부산진교회의 행정에 다양한 변화가 주목된다. 예배와 기도회와 관련하여, 성찬식을 1년에 4번씩 정기적으로 가졌으며, 1916년 9월부터 주일예배를 오전 7시 30분에 드리기 시작했다. 정기적인 기도회도 개최되었는데, 특별새벽기도회와 만국연합기도회를 위해 정기적으로 모였다.

교회조직도 체계화되었다. 1915년 7월에는 아동들의 교회교육을 위한 소아회가 설립되어 신앙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13세 이하는 주일학교에서 그리고 그 이상은 성경강론회에서 교육했다. 또한 주일학교는 남녀 각각 교육했으며, 여교사들이 여자부를 담당했다. 주일학교 아동들의 수가 600여 명에 이르렀다. 청년들의 신앙교육을 위한 성경강설회가 설립된 것도 이때였다.

권찰회도 활성화되었다. 권찰제도는 교회의 성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권찰은 조선교회 초기 복음전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 평신도 지도자의 양성을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권찰은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삶과 신앙으로 복음을 전했다. 제한된 시간에만 복음전도를 한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복음전도였다. 그렇기에 이들 중에서 교회의 평신도지도자들이 배출되었고, 그 지도력은 존중될 수 있었다. 권찰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칭찬 받는 사람들로, 복음전도의 전위대 역할을 수행했다. 평양대부흥운동에 있어 서도 이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부산진교회뿐만 아니라, 부산지역의 다른 교회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당회의 구성과 함께 교회조직의 체계화, 교육의 활성화, 지도자의 양성 등이 교회의 형편에 맞게 다양하게 모색되었다. 교회 여성들도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 여성들의 교회교육과 역사의식

교회여성들에 대한 신앙교육과 함께 역사의식 함양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교회 내적으로는, 여성들을 위한 성경학습반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동래읍교회에서는 부인반이 운영되었고, 여선교사들과 선교사들의 부인들이 지도를 담당했다. 40-50여 명이 모였고,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 등의 기독교 근본 교리들이 교육되었다.

특히 부산지역 교회여성들은 교육의 대상에서 교육하는 주체로 평신도 지도력 전면에 등장한다. 교회 내에서 마저도 남녀차별이 적지 않았던 시기에, 제일영도교회에서는 여전도사의 청빙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청빙은 부인전도회의 제안으로 인해 가능했다. 교회여성 스스로 여성교회지도자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더욱이 이 청빙은 교회연합 청빙이었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일영도교회백년사'는 다음과 같이 역사적인 여전도사 청빙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본 교회 역사상 아마도 처음 맞이하게 되는 여 전도사 청빙 건은 '본교회부인전도회에셔' 당회에 제기하였다. '최씨부인창신'(최창신)을 영주동(초량), 토셩뎡(항서) 및 조도 교회와 함께 본 교회를 겸임하는 '녀조사'로 네 교회 부인전도회가 '월급9원식'을 드리기로 하고 공동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당회는 이를 허락하였다(1918년 9월 18일)."

또한 이러한 신앙교육은 여성들의 역사의식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동래읍교회 교인들이던 박시연과 김응수는 부산지역 삼일운동의 시발점이 된 부산진일신여학교의 교사와 학생이었다. 선교사들의 여성교육은 신앙교육과 함께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다양한 교과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복음 전도와 교육선교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은 부산지역 복음화와 민족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경회를 통한 신앙교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탁지일 교수 / 부산노회여전도회연합회 10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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