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 100일, 더 단단하게 '회복' 싹틔울 준비

힌남노 100일, 더 단단하게 '회복' 싹틔울 준비

[ 송년기획 ] 태풍이 지나 간 자리에서 더욱 단단한 생명을 싹틔우는 포항지역의 교회와 주민들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2년 12월 27일(화) 08:18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포항=최은숙 기자】"힌남노요? 힌남노가 뭐입니까? 우리는 예 좋은 일이 더 많아가 다 잊어뿌랐습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어떤 준비도 할 수 없었다.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간 상처는 그래서 더 깊었다.

지난 9월 6일 새벽. 포항에 시간당 110㎜폭우가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주요 도로와 마을 일대가 모두 물에 잠기고 정전 됐다.

침수된 차량이 도로 위로 뒤엉켜 쑥대밭이 되고 무너진 주택의 축대와 나무들, 산에서 쏟아진 토사와 돌덩어리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지난 20일, 태풍 힌남노가 훓고 지나간 그 자리를 다시 찾았다.

하천의 범람으로 유독 피해가 컸던 포항 대송면 일대. 지난 태풍의 상흔은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평안하고 고요했다.

'힌남노'는 라오스 말로 '돌가시나무 새싹'이라는 뜻이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지만 그 만큼 또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행히 교회가 '위기' 속에서 '회복'을 싹틔울 사명을 잊지 않았고, 교회의 교회다움으로 '이웃사랑'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이재민들을 위한 지역교회의 기증품. 어린 학생들이 편지를 써서 보낸 컵라면.
망연자실한 이재민.
"하나님은 신실하시니까요."

포항송동교회 박희영 목사와 도구제일교회 이종선 목사의 고백이었다.

도구제일교회는 이번 태풍으로 예배당과 목양실 등 교회 전체가 침수됐다. 교회가 침수되는 과정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물이라도 퍼낼 생각으로 들어갔지만 그마저도 감전의 위험 때문에 선뜻 나설 수도 없었다. 이 목사는 "그래도 인명피해가 없었고, 교인들의 피해가 적었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노아의 홍수가 재현되는 것 같았다"는 박희영 목사는 "지대가 높아 교회 지하만 침수됐고, 지역주민들이 교회로 대피할 수 있었다"면서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그러나 태풍이 물러간 자리에 남은 것은 눈물과 한숨뿐이었다. 마을 전체가 침수되면서 성도들과 지역주민들의 피해가 컸다. 빗물과 범람한 흙탕물이 집 안으로 뒤덮여 가구와 전자제품, 가재도구 등 모든 생필품이 망가졌다. 한 순간에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이웃들은 막막함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교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포항송동교회는 교인 50가정이 피해를 입었다. 박희영 목사는 '숟가락'이라도 나누자는 심정으로 심방에 나섰다. 태풍이 물러간 자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가혹했다. 무조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한 성도가 먼저 45kg쌀을 내어놓고, 뒤이어 선풍기가 도착했다. 식료품과 생필품, 의류와 신발 등 다양한 물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먼저 피해를 당한 교인들을 모시고, 필요한 물건을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후에도 교회는 기증받은 전자제품과 생필품들을 교인들의 가정에 하나 둘 채우면서 상처를 보듬어 갔다.

이젠 지역을 위한 나눔이 필요했다. 교회는 1차에 이어 2차 나눔장터를 준비했다. 지역 맘카페에 교회 사역이 전해지면서 1000만원 상당의 기증품이 교회 마당을 가득채우는 '기적'도 일어났다. "2차를 준비하는데 물건이 별로 없어 막막했다"는 박 목사는 "포항 전지역과 인천 수원에서도 기증품이 도착해 교회 마당이 가득찼다"면서 "더 놀라운 건 이 물건들이 단 1시간 만에 동이 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고 했다. 2차 나눔장터에는 교회가 준비한 식사와 솜사탕, 붕어빵, 이발봉사까지 이어졌다.

송동교회의 나눔 사역이 지역에 소문이 나면서 '쌀을 달라'는 주민이 찾아왔다.

급한대로 사택의 쌀을 전한 박 목사는 모금을 통해 쌀 200포를 준비했다. "교회에 오면 쌀을 준다고 홍보했는데 500명이 교회를 찾았다"는 박 목사는 교회를 찾은 발길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기에 일일히 주소를 적은 후, 그날 밤까지 이웃들의 집을 찾아가며 직접 쌀을 전달했다.박 목사는 "예상하지 못했던 재정이었지만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섬김에 동참하면서 이웃들을 섬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교회의 피해가 큰 도구제일교회 이종선 목사도 교회보다 지역을 먼저 섬겼다. 먼저 교인들에게 50만원의 재난지원급을 급하게 전달하고 이후에는 지역주민 60가정에 각종 생필품과 상품권 등을 전하며 격려했다. 교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헌금은 재산피해가 큰 소상공인들에게 전달하며 위로했다.

송동교회 나눔바자회를 찾은 이웃주민들.
쌀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주민들.
포항송동교회 박희영 목사(좌), 도구제일교회 이종선 목사.
"고난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다"는 두 목회자의 고백은 계속 이어졌다.

"교회에 나오지 않거나 적대적이었던 분들도 교회의 섬김에 감동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주님은 위기를 통해 다시 한번 살아계신 주님을 확인시켜 주셨고, 분명히 온전한 회복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그 누구도 하지 않으면 그 일은 교회의 몫입니다. 할 수 없는 일, 하기 싫은 일은 교회가 해야해요. 무엇보다 교회가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진심으로 섬길 때에, 교회 마당에 믿지 않은 이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들의 고백에 한 성도가 화답했다. "저는 슬프지 않아요. 제가 지금 살아있고 이렇게 건강한데 모든 것이 은혜고 감사뿐입니다."



힌남노가 남기고 간 자리에서 교회는 더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며 회복을 싹틔울 준비에 바쁘다. 이렇게 혹독한 추위가 끝나면 따뜻한 봄날이 오겠지. 그 때 우리는 더 강한 생명력으로 다시 또 새날을 살아갈 것이다.

포항남노회 사회봉사부 부장 우병인 목사(우), 금광교회 김관호 목사.


포항남노회 사회봉사부, 피해지역 일일이 찾아가 상황 점검

힌남노가 순식간에 포항을 덮쳤을 때, 포항남노회 사회봉사부는 피해지역과 교회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상황을 점검하고 총회에 보고했다.

총회는 현장의 빠른 조치와 제보로 상황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었고,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원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당시 노회 사회봉사부 서기였던 우병인 목사(베들레헴 교회)는 "포항남노회 소속 교회와 이북노회 교회까지 40여 개 교회가 피해를 입었다. 포항지역의 100여 개 교회가 침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우리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했다.

추석과 총회까지 앞둔 시점에서 복구가 늦어지면 교회의 예배회복과 사역이 늦어질 것을 우려해, 포항남노회 사회봉사부는 더 적극적으로 피해복구 활동에 나섰다. 더구나 종교시설에 대한 정부의 보상도 전무했다.

우 목사는 "작은교회는 경제적인 문제가 크다. 교회를 복구하지 못하고 예배를 회복하지 못하면 사역을 이어갈 수없었기 때문에 긴박한 상황이었다"면서 "총회가 관심을 갖고 도와운 덕분에 교회들이 빠르게 제 자리를 찾게 됐다"고 했다.

이날 우 목사와 함께 한 금광교회 김관호 목사는 "우리는 어르신들 10여 명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작은 교회"면서 "날이 갑자기 추워지면 어르신들이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당장 대출이라도 받아서 공사를 받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총회와 여러 교회의 도움으로 대출없이 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는 김 목사는 "어르신들 모시고 따뜻하게 예배 잘 드리고 있다"면서 감사를 전했다.

우 목사는 "제2의 힌남노 참사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노회차원의 매뉴얼이 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로 집중호우를 동반한 강한 태풍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우 목사는 "처음에 너무 놀라고 당황해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다"면서 "재난과 상황에 맞는 노회차원의 대응매뉴얼이 제작되어, 노회 자체적으로도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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