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공동체로 신뢰 얻어야 선교적 사명 가능

윤리적 공동체로 신뢰 얻어야 선교적 사명 가능

[ 연중기획ESG ] 새롭게 이롭게-G(11) 교회, ESG 윤리운영을 모색하다

성석환 교수
2022년 11월 15일(화) 08:10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현저히 낮아지고는 있지만, 로버트 푸트넘(R. Putnum), 로버트 우스나우(R. Wuthnow)와 같은 저명한 미국의 종교사회학자들과 심지어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유럽의 다수의 정치철학자들조차 종교의 공적 역할이 더욱 증대되어야 하며 공공 영역의 다양한 논의에 종교가 참여하여 공동선을 위한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한국교회는 충분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

현대 사회의 한 제도로서 교회는 이른바 '도덕적 공동체(moral community)'의 역할을 감당한다. 사회적 삶의 토대를 이루는 윤리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입장과 의견의 충돌을 조정하고 모두의 유익을 추구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내부적 동일성을 강화하는 일에만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이러한 공적 역할에 소홀하면 교회는 배타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성격을 띠게 되어 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적 가치를 신실히 보수하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표현으로 존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곧 동시대성에 호응하는 지혜로운 선교이며 복음을 늘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신앙공동체가 파송된 시대의 징표를 분별하여 동시대 언어로 복음을 해석하고 공론장에 참여하여 더 나은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것이 오늘날 현대교회에 요청되는 선교적 사명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ESG 경영지표를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교회가 그 활용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의미 있다. '환경(Environmental), 사회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인 ESG는 생산, 유통, 기획, 분배, 판매 등 일련의 경영활동에 있어서 탄소중립망 가입 및 생산라인 구축, 또 인권, 안전, 공정 등의 기업문화 구축, 그리고 참여적이고 협력적인 의사결정 과정 구축 등의 비재무적 요소들을 수치화하여 공적 자금이나 투자회사의 투자지원을 제한, 규제, 권장하고 이 기준에 따라 정부 및 민간의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함으로써 보다 지속가능하고 책임적인 경영이 새로운 산업적 기준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교회의 윤리운영, 어떻게 할 수 있나?

ESG가 기본적으로 기업경영과 관련된 지수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기업경영의 지수를 그대로 교회의 운영지수로 적용하는 것이 적합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신학적 차원은 별개로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ESG 중 G(지배구조)가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울 것이라는 각계의 평가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역시 비슷할 것이라 본다. 그만큼 한국기업과 한국교회의 지배구조는 수직적이고 중앙집권적이며 민주적이거나 협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관은 정책입안 과정에 주민과 시민의 주체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자 한다. ESG 경영을 하고자 하는 한국기업들은 이제 재벌총수와 후계자들의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고 사외이사를 적극 유치하며 주주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과 상생협력에 나서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ESG 지수가 호응을 받는 이유는, 그렇게 했을 때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지고 회사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회 역시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윤리적으로 운영할 때 더 좋은 교회가 될 것인가? 우리는 교회가 사회적 물의를 빚은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분명히 지배구조나 의사소통 방식 및 운영방식의 민주적이고 윤리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지는 것은 복음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교회의 지배구조가 사회의 모범이 될 만한 모습이 아니고, 또 재정운영도 투명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반감의 표시일 것이다. 하지만 본래 개신교회의 운영방식은 매우 윤리적이고도 균형감 있는 정치제도를 따른다.

종교개혁자들의 교회운영은 중세교회의 그것과 확연히 달랐고, 특히 모든 성도들이 교회운영에 참여할 여지는 이전보다 분명히 높아졌다. 다양한 종파와 교파의 차이는 있지만, 개신교회는 '만인사제론'에 따라 모든 성도가 교회의 몸을 구성하는 지체들로서 모두 동등하게 은사에 따라 역할을 감당하고 법으로 정해진 권위에 대해서는 상호 신뢰로 존중하고 따르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균형감을 잃고 교회운영이 경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교회들이 교회의 중요사안을 소수의 영향력 있는 이들의 회의에서 결정하여 교회의 다툼과 갈등이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다. 비록 법적으로 보장된 이들의 권한이라 하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 사회에서 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헤아리려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교단은 제직회와 공동의회 등의 장치를 통해 그러한 의사결정의 다양성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으나, 대부분 형식적이거나 이미 정해진 결정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부 중소형 교회들에서는 평신도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설치하여 당회와 협력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해외의 사례로는 호주연합교회를 들 수가 있는데, '총회-노회-당회'의 의사결정 구조에 더하여 지역교회 마다 '운영위원회(Church Council)'가 법제화되어 있어, 당회는 목회자와 목양에 참여하고, 정치와 운영은 평신도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다. 상황이 달라 그대로 적용키는 어려우나 참고할 만 하다.

ESG가 기업경영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주장처럼, 교회 내부의 운영방식을 개선하면 선교에도 도움이 된다. 지역사회와의 보다 적극적인 협력이 가능해지는데, 사실 교회가 지역사회와 협력하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한 인적 자원들이 제대로 동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성도들의 의사결정 구조를 다양하게 보장하면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사회의 의제에 참여하여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 이미 본보에서 소개한 광양 대광교회나 완도 성광교회가 그러한 사례라고 하겠다. 물적 자원만으로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인적 자원이 적극적으로 지역의 행사와 의사결정에 참여함으로써 복음적 가치가 녹아나는 지역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 선교적 교회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거룩한 교회와 윤리적 교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ESG 지수를 도입하고 윤리적 운영을 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교회의 거룩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의 거룩함은 신학적 차원이다. 그러나 거룩한 교회가 윤리적이고 책임적인 제도로 복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거룩한 교회는 인간의 윤리적 운영방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지만, 동시에 거룩한 교회는 시대적 징표로서 모범적이며 기준을 제시하는 실천적 차원을 가진다.

돈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조차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미래세대를 위한 경영방식의 변화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한국교회가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외면하고 오히려 거꾸로 가서는 안 된다. 먼저 윤리적 공동체로 신뢰를 받아야만 공적 영역에서 교회의 거룩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이다. 암에 걸리면 체질을 바꾸고 수술을 해야 한다. 어쩌면 ESG 지수는, 특히 지배구조의 개선은 한국교회에게 꼭 필요한 체질개선과 수술의 도구가 될 것이다.

성석환 교수 / 장신대, 기독교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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