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고 창조적인 노동

복되고 창조적인 노동

[ 가정예배 ] 2022년 7월 14일 드리는 가정예배

김남형 목사
2022년 07월 14일(목) 00:10
김남형 목사
▶본문 : 창세기 1장 26~31절

▶찬송 : 580장



태초에 하나님께서 노동을 하셨다. 무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거룩한 노동을 하셨다. 하지만 노동은 유사 이래 거룩하게 여겨지기는커녕 천대받거나 압제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요즈음 많은 젊은이들의 장래 소망이 건물주라고 한다. 여기서 건물주라는 대명사가 상징하는 바는 노동하지 않고 경제적 안정을 지속적으로 누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이 기독교적인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한 것 같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노동을 하셨고, 그 노동의 결과물인 피조물들과 관계를 맺는 후속 노동을 이어가신다.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에게 창조의 남은 부분을 맡기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26절)" 심지어 하나님은 이 말 안 듣는 인간들에게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까지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단 6일 만에 끝난 것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무한한 책임감 때문에 계속적 창조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지만 모든 노동이 그렇지는 않다. 왕상 21장에 나오는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의 노동은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 타인을 해치고 그의 소유를 갈취하는 범죄였다. 사무엘하 11장에 등장하는 다윗 왕의 노동 역시 자신의 탐욕스러운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실한 부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교사였다. 성찰하지 않는 노동이 타인의 것을 빼앗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성경에서 말하는 노동의 바른 의미를 깨달아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지내야 하겠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기에, 우리의 언어생활 역시 중요한 노동이 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표현이 맞는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개의 집을 창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은 직업이 아니라 삶 전체다. 언어는 꼭 음성으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므로 언어장애인도 창조적 노동자라 할 수 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과거에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이제는 형제로 받으라고 권면한 것(몬 1:16)은 언어가 어떻게 창조적 노동이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둘째, 하나님은 첫 사람에게 피조세계를 다스리라고 하셨다. 이 말은 앞서 예를 든 아합과 이세벨, 다윗의 경우처럼 닥치는 대로 마음껏 착취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의 죄에 대해 무한대의 책임을 지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유일한 피조물답게 좋은 정원사가 되어 피조세계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들라는 것이다. 폭풍우가 지나가면 쓰러진 나무도 치우고, 무너진 길도 재건하여 동물들이 다니게 하라는 뜻이다. 자신만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를 둘러보며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복되고 창조적인 노동이다.



오늘의기도

우리가 주신 생명 다하여 창조적인 노동을 이어가게 하옵소서. 나를 넘어 피조세계 전체를 돌보는 좋은 정원사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남형 목사/화곡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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