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란(托卵)

탁란(托卵)

[ 주필칼럼 ]

김보현 목사
2022년 05월 31일(화) 14:16
탁란(托卵), 자연 생태계 가운데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 부화와 양육을 위탁하는 습성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공중을 나는 새뿐 아니라 물속 어류들 가운데에서도 종종 관찰된다고 한다. 특별히 뻐꾸기라는 새는 120종 가운데 무려 30종이 탁란의 습성을 갖고 있어 '탁란'의 대표 주자로 종종 언급되곤 한다.

장로교회의 고향은 어디인가. 칼뱅이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제네바, 장로교회가 공통분모로 여기는 교리와 신앙고백이 탄생한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존 녹스와 멜빌 등 위대한 개혁가들에 의해 명실상부한 장로교 정치 원리가 완성되고 언약도들의 순교 역사를 간직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다양한 요인들로 갈라져 왔음에도 한국교회 성장을 견인해 했다. 한국에 수많은 장로교단이 있으나 칼뱅의 개혁정신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교리는 예외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2009년 칼뱅 탄생 500주년을 계기로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그가 태어난 7월 10일 전후에 매년 한국장로교회의 날로 지켜오고 있다. 동시에 각 장로교회들이 저마다의 헌법을 갖고 있으나, 정치 체제로는 1917년 제6회 총회에서 웨스트민스터 교리와 신앙고백 근간으로 작성한 장로교 헌법을 정통성의 근거로 삼고 있다.

장로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세 도시, 제네바와 런던, 그리고 에딘버러를 순례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 있다. 제네바의 생 피에르 성당,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에딘버러의 센 자일스 교회 등이다. 500년 전 칼뱅과 녹스가 개혁을 외치고, 바른 신앙적 토대를 놓기 위해 5년 동안 1000번 이상의 회의와 토론이 거듭했던 현장은 방문자들에게 남다른 숙연함을 더해 준다.

그런데 개혁가들이 활동하고 그 정신을 꽃피웠던 곳 모두는 구질서, 옛 신앙적 전통의 구심점이 되었던 곳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웨스트민스터는 조금 다른 면을 보인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이 작성되기 위해 1000번 이상의 회의가 열렸던 수 년간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이전에도 장로교회와 무관했듯 그 이후에도 전통적인 군주들의 행사장, 영국 국교회의 중심지로 충실히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웨스트민스터는 세계 장로교회가 부화한 '탁란'의 둥지라 할 수 있겠다.

코로나 팬데믹은 한국교회의 위기 현상을 대변해 온 '가나안교인'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 본 교단이 발표한 '2022년 코로나19 한국교회 변화 추적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그러한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에도 일정기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성도들이 57.8%로 바로 현장 예배에 참석하겠다는 성도(28.3%)의 두 배 이상되는 응답을 기록했다. 또한 온라인예배를 중단하면 교회를 출석하겠다는 응답(57.3%)은 코로나 기간이 장기화 되면서 이전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목회자들 또한 향후 주일예배 운영계획에서 온오프라인에서 병행해 실시하겠다는 응답은 꾸준히 늘어났고, 현장예배만 드리겠다는 응답은 감소세를 보였다.

최근 ESG 경영에 대해 연구해 온 한 목회자는 한 세미나에서 '기업들이 이윤추구라는 전통적인 기업의 논리(둥지)를 버리고 ESG경영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요구를 간파한 가장 기업 논리에 충실한 대응'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과거 이단들은 분열하는 장로교단의 숲에 숨어들어 뿌리를 내린 적이 있다. 오늘날은 대담하게도 신천지와 통일교는 팔레스타인 문제, UN여성 활동, 한반도 평화 활동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정통 교회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탁란조(鳥)'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 복음의 생명력이 부화하고 자랄 새 시대, 복음의 둥지는 어디일까. 교회를 나오지 않는 가나안교인보다, 변화하는 세상을 외면하고, 세상과 땅끝으로 나아가지 않는 또 다른 '가나안' 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김보현 목사 /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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