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앞에 선 한국교회

갈림길 앞에 선 한국교회

[ 주필칼럼 ]

김보현 목사
2022년 05월 06일(금) 07:44
코로나로 답답했던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 5월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 사라지면서 늦게나마 봄기운을 마음껏 호흡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말부터는 교회 내에서 애찬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대면 집회 확대 허용에 이어 교회 생활의 제약도 대부분 사라진 상황이다.

거리두기 완화에도 감염자 지표가 개선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여전히 감염자 규모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 가을철 새로운 변이 등장 가능성도 남아 있어 염려를 놓을 수 없다. 더욱이 한마음으로 헤쳐가야 할 중요한 시기에 출범을 앞둔 새 정부 인수위와 방역 당국 간 불통의 모습은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의 모습은 마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과 같다. 더 이상 당국의 요구나 제재가 문제가 아니다. 지난 2년 여 시간은 매우 긴 공백이었으며 경험해 보지 못한 신앙적 도전 기간이었다. 코로나 직전 신앙생활을 시작한 초신자들이나 형식적으로 믿음 생활을 영위하던 이들은 물론이고, 무탈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초기에 불편하게 느껴졌던 온라인 예배, 뭔가 미진했던 비대면 모임들이 어느덧 익숙함을 넘어 편리함으로 자리 잡았다. 대면예배가 시작되고 교회가 문을 활짝 열었음에도 '여기가 좋사오니' 외면하는 마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립을 위해 애쓰던 교회들 중에는 신앙공동체로서의 구심점과 동력을 잃어버리고 목회자 가족만 남아 새롭게 일어서기 위해 분투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뿐만 아니다. 코로나 이전의 예배 모습을 회복 중인 교회들, 코로나 중에 새로운 목회적 대응을 통해 온오프라인 모든 영역에서 활성화 되고 심지어 전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교회들도 없지 않다. 문제는 이 교회들조차 코로나 이후에 교회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염려에 있어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교회는 고령화와 출산율 급감, 기후 위기와 초기술 문명사회의 도래, 여기에 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 하락 등 전방위적 위기에 직면해 왔다. 여기에 온 사회가 시대적 위기를 외면한 채 대선 등 정치적 사안에 골몰해 양분되어 버린 상황에서 교회와 신앙인마저 정치친화적 집단의 이미지를 덧입게 됐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이미 늦기는 하였어도 한국교회 신앙생태계와 성도들의 신앙적 의식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지 새삼 관심을 가질 때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 교회는 피난 길에 주님을 만나 물었다는 베드로와 같이 묻지 않을 수 없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코로나 이전의 교회로 돌아가는 회복을 꿈 꿀 것인가, 아니면 가본 적 없는 새로운 신앙의 여정으로 더듬으며 나아갈 것인가?

1865년은 토마스 선교사가 중국에서 좌절을 뒤로한 채 새로운 선교지 조선을 마음에 품고 들어갈 길을 구하고 있던 때였다. 이때 영국에서는 새로운 법 하나가 발표된다. 이른바 '붉은 깃발법'이라 불리는 도로교통에 관한 것이었다. 말과 마차를 대신해 새로운 교통수단이 출연했는데 내연기관 자동자의 전신인 '증기트랙터'였다. 새로운 기술을 반기는 이들도 있었으나 정부는 무거운 차량으로 인한 도로 파손, 보행자의 안전, 소음, 기존 마차산업의 보호 등을 이유로 속도를 제한했다. 이 법률은 19세기 말에야 사라지게 되는데 오늘날 기득권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의 대명사처럼 이 법명이 종종 소환되고는 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한 세기 전 한국교회는 3.1 만세 운동 이후 혼돈기,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갔던 경험을 갖고 있다. 구령(救靈)의 사명에 집중했던 교회는 이른바 내면화된 신앙의 길을 나아갔다. 반면 새로운 학문과 이념을 수용하고 세상 한 가운데서 사회적 복음을 실천하고 했던 이들의 길도 있었다. 팬데믹 이후 새로운 시대를 '역병의 역설', 회복과 부흥으로 맞고자 하는 모두의 열망, 우리는 지금 갈림길 앞에 서 있다. 돌아갈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김보현 목사 / 총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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