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착해야 합니다

무조건 착해야 합니다

[ 목양칼럼 ]

호병기 목사
2021년 11월 10일(수) 08:18
성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믿는 자는 무조건 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금치 못한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너희 착한 행실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이르신다. 그리고 사도 바울께서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며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하신다. 그래서 앞뒤 없이 착하게 살자고 다짐하며 산다.

그런데 상담심리를 접하다 보니 착함도 구분을 해야 됨을 알게 되었다. 착함이 심리적인 수준에서의 착함이 있고, 성령의 역사로 표출되는 착함이 있다.

심리적인 수준의 선은 다분히 인정 욕구에 따르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내가 선을 선택하여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가 영광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요구하시는 선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성령의 역사로, 내 안에 주님께서 선을 드러내심으로 나타나는 선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깨끗이 돌리는 것이다.

어렸을 적 필자는 착한 아이로 자랐다. 늘 선택하는 것은 '착함' 쪽에 있는 것이었다.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시골에서 살았는데, 지붕을 엮어 올릴 때 막걸리를 받아 오라면 어린 필자가 나서서 다녀왔다. 그리고 부엌 한쪽으로 있는 헛간에 짚을 쌓아 놓는 일과 부엌에 있는 물항아리에 물을 채워 놓는 일을 하며 늘 어머니를 도왔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됐다. 둘째인 필자는 형과 병약한 남동생 사이에서 어른들의 관심과 시선을 끌기 위해 '착함'을 선택하였고, 칭찬을 즐기기 위해 그랬음을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이런 접근을 하는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외식하였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자 선했다. 성도들 중에도 있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이다. 재산을 팔아 일부를 내놓았지만 제법 큰 헌금이었다. 그들도 하나님 영광보다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하였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류의 접근을 마귀 짓이라 하였다.

성경을 보다가 질문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나사로가 병이 걸려 죽게 되었으니 속히 오시라는 전갈을 받으시는데 이틀을 유하여 죽은 다음에 나타나시는 장면에서다. 속히 오시지 않았다고 야속해 하는 마르다와 마리아, 사람들을 보신다. 그런 그들을 보시고, 나사로가 안장 된 무덤에 가 돌 문을 치우게 하고, 주님은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며, 다시 살게 하신다.

질문은 나사로가 죽기 전에 속히 오셔서 치유하셨다면 그것도 선한 것인가이다.

가끔 성경 공부를 하며 물어보면 '선하다'는 답을 제법들 한다. 그런데 그것은 악이 된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그 국면에서 나사로를 다시 살려, 예수님이 부활의 주인 것을 보여주시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치유가 아니라 부활이시기 때문에, 치유하면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믿는 성도들은 무조건 착해야 한다. 그런데 심리적인 인정 욕구에 따른 내 이름 내기인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한 주님의 역사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고 나서,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라고 영광을 돌리지만, 은근히 나도 영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깔리는지를 살피면서 경계해야 한다.



호병기 목사 / 봉화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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