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갈 준비가 되었는가?

주님께 갈 준비가 되었는가?

[ 목양칼럼 ]

박재필 목사
2021년 11월 03일(수) 08:25
목회하면서 제일 많이 반복적으로 하는 사역 중의 하나가 장례예식 집례일 것이다. 30년 전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전임사역을 한 교회는 대형교회였기에 장례가 참 많았다. 2년간 맡아본 교구에서 무려 54번의 장례를 맡았으니 평균 두 주에 한 번씩 장례를 치렀다. 한 번 장례식에 사흘이 소요되었으니 2년간 장례로 날이 새고 지는 날의 연속이었다.

처음 장례를 맡았을 때는 유족들이 너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유족처럼 우는 장면을 본 같은 교회 친한 선배 목사가 "아니, 장례를 맡은 목회자가 울면 어떡해. 마음 속으로 슬퍼하고 겉은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장례를 이끌어야지" 하면서 책망과 조언을 주었는데, 평생의 귀한 가르침이 되었다.

정말 다양한 죽음을 본 것 중에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임종이 있었다. 십 수 년 전, 대전에서 목회할 때 목회자를 말 없이 격려하고 힘이 되어주셨던 장로님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워낙 말이 없으셔서 '용각산'이라고 불리기도 하셨다. 당회 때 발언이 없으신 것은 물론이고, 목사를 초대해서 경영하시는 공장의 마당에서 삼겹살 파티를 열어 주시면서도 목회자 가족들이 즐겁게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시고, 때론 따로 만나 식사를 해도 내가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침묵 속에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늘 목사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그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기에 그분과의 만남은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다.

그랬던 장로님이 은퇴를 2~3년 앞두고 많이 약해지셨다. 잦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말 없이 자신의 직분과 사명은 다 감당하시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늘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은퇴 후 얼마 안 돼서 이번에는 정말 약해진 모습으로 입원을 하셨다. 주일 일과를 다 마친 후 다른 장로님들에게 오늘 주일예배에 장로님이 못 오셔서 많이 서운해 하실 테니 병원으로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자고 말씀 드렸더니 5, 6명의 장로님이 기꺼이 동행해 주셨다.

지금처럼 11월 초순이었는데 그날 따라 이른 눈이 많이 내렸다. 병실에 도착해 예배를 드리고, 잠시 환담하는 중에 장로님이 작지만 선명한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한다. "목사님, 그동안 말씀으로 양육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목사님을 더 돕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장로님들, 감사했습니다. 이제 제가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천국에서 꼭 뵙시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 인사에 나는 "장로님, 무슨 말씀이시냐, 빨리 회복하시라"고 격려를 했다. 누가 봐도 아직은 안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장로님과 가족들에게 인사한 후에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의료진들이 병실로 뛰어간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장로님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 장로님은 선명하게 이별을 고하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11월 초순이 되면 가끔 눈이 오는 날 떠나신 장로님을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장례를 집례 하면서 묻는다. 나는 남겨진 사람들과 그렇게 아름답게 이별을 고하고 천국에 갈 준비를 했는가. 장례예식 때 조문객들에게 자주 "오늘 고인의 장례처럼 우리의 장례가 멀지 않았다"는 경각심을 주지만, 회중들은 남의 장례를 보면서 자신의 장례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얼굴을 한다. 몇 해 전 심혈관질환을 심각하게 앓아서 관상동맥 세 줄이 다 막혀 혈관 속에 스텐트를 무려 여섯 개나 넣고 살고 있다. 그 날 이후로는 주님 앞에 언제든 주님이 부르실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산다. 잘 준비하고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박재필 목사 / 청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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