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재판

신비주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재판

[ 인문학산책 ] 31

안윤기 교수
2021년 09월 15일(수) 08:45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중세 스콜라철학을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교리 체계 같은 것으로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안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매우 다양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스콜라철학은 신비주의 전통과도 연결되는데, 이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였다. 그는 도미니쿠스 수도회 회원이었고, 파리와 쾰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교수로 강의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고전에 조예가 깊고 매우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인물이지만,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일찌감치 '신비주의'의 대명사로 간주하여 기묘한 '비합리성', '초자연성'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다. 19세기까지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문헌도 독일어 설교집이 전부여서 그의 사상에 대한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그의 라틴어 논문도 발굴되고 전문 학자의 많은 연구가 이뤄진 끝에 지금은 그의 사상의 연원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는 13세기 스콜라철학의 대부였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200~1280)의 계보를 잇는 여러 제자 중,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아니라, 프라이베르크의 테오도릭(Theodoric of Freiberg, 1240~1310)의 영향을 받아 고유한 사상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가 중세 스콜라철학의 은하수 성운 저편 어느 한켠에 위치한 별종의 이단이 아니라, 유구한 학맥 가운데 당당히 자리 잡은 사상이라는 말이다.

크게 세 가지 원천에 에크하르트의 철학은 많이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기독교 삼위일체론이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 특히 아베로에스에 의해 해석된 능동 이성 이론, 세 번째로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강조했던 청빈 사상이다. 먼저 삼위일체 신론이 에크하르트 사상의 기초에 놓여있다. 물론 그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만물의 원리가 되는 '참된 존재'였으나, 이것은 이내 신, 특히 성부 하나님으로 이해되며, '존재'가 가능케 하는 '존재자'는 성부에게서 태어나신 성자 하나님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가 '낳은 자/태어난 자'라는 차이를 가지면서도 여전히 한 분이듯이, 존재와 존재자, 선 자체와 선한 것, 생명과 살아있는 것은 모두 하나임을 에크하르트는 주장했다. 삼위일체 모델이 투영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차이 중에도 유지되는) 동일성은 이 땅에서 발생하거나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원리인데, 우리는 그런 진리를 심령의 가장 깊은 곳, 아리스토텔레스적 용어를 빌리자면 '순수 능동 이성'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이 능력은 감각 경험에 오염되어서는 안 되고, 도리어 그런 것과 철저히 분리시켜, 거룩성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 영혼의 지성소이다. 그래야 우리가 천상의 진리를 알게 되고, 바로 그때 우리 속사람 가운데 신의 탄생, 곧 '성육신'(incarnatio)이 일어나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기독교 신학의 주요 개념과 교리를 철학의 용어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는데, 특히 '성육신'은 그가 즐겨 다룬 주제였다. 그런데 성육신 교리를 논함에 있어서 그는 이것을 굳이 예수 그리스도 한 명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사람 안에서 하나님이 탄생해, 결국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하려 했다. 크리스마스는 단순히 베들레헴 마구간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임한 심오한 영적 신비를 간직한 사건이었다. 이 막중한 복음을 성경은 그저 간단히 언급하고 있지만, 에크하르트는 이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요한복음 15장 15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겠다고 하셨다. '종'은 상하 관계에서 사용되는 단어인데,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니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동등한 위상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일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인간에게도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의 절정은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듯이,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라는데 있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사도 바울이 헬라 시인의 말을 인용했듯이,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그분을 특정 대상처럼 여겨서는 안될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것과 구별되지만, 하나님은 만유의 존재 근원이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구별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어떤 고유한 특성도 갖지 않고, 지극히 가난한 모습으로 만유 안에 내재하신다. 참된 삶을 사는 인간도 그런 하나님의 작은 불꽃을 심령의 지성소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하며, 이로써 만유와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에크하르트는 주장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신비주의는 황홀경에 이르는 명상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전통 사상에서 출발하여 논리적 추론을 거쳐 이끌어진 결론은 ­ 비록 강한 설득력을 지녔으나 ­ 기성교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파격적 주장이어서, 에크하르트는 쾰른 대주교의 고발을 받아 아비뇽으로 소환되었다. 1327년 교황 요한22세가 소집한 재판이었다. 조사위원회는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을 에크하르트가 부정한 점, 인간의 범죄를 하나님이 원하셨다는 에크하르트의 참람한 주장,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 점, 하나님과의 직접 교제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제쳐놓은 점 등을 지적하며, 그에게 이단적 요소가 있다고 송사했다. 교황은 그가 신자의 마음에 사특한 '마귀의 씨앗'을 뿌려놓았다고 꾸짖기도 했다.

이처럼 에크하르트의 주장이 과도한 측면이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 신학과 철학(세속학문)의 유기적 결합을 시도하는 모습, 고전이 담은 사유를 일관성 있게 전개하여 새로운 통찰에 도달하는 추리력, 그 발상의 과격함과 철저함, 폭넓은 적용범위 등이 특히 주목된다. "내가 곧 예수와 다를 바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자칫 오늘날도 이단 시비가 붙을 수 있는 주장이지만, 매일 주님 닮아가려 애쓰고, 주님의 손과 발 되어 이웃을 섬기는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목표가 존재로 표현되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안윤기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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