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독자적인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대 로저 베이컨

과학은 독자적인가?: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대 로저 베이컨

[ 인문학산책 ] 26

안윤기 교수
2021년 08월 10일(화) 14:05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좌). 로저 베이컨(우).
중세 대학의 성립은 서양 문명사에 있어서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학문 발전이 본 궤도에 오르고, 사회 발전도 가속화되었다. 파리대학은 1200년에 설립되자마자 곧바로 최고의 신학 연구 센터로 각광을 받았다. 볼로냐대학은 법률 교육으로 유명했으며, 살레르노와 몽펠리에대학은 의학 교육으로, 옥스퍼드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다.

대학은 기초과정을 담당하는 인문학부와 상급교육을 담당하는 신학, 법학, 의학의 3개 학부로 구성되었다. 인문학부에서는 7개 교양학(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술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을 가르쳤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이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자연학'에 대한 강의도 추가되었다. 교양과목을 모두 이수해 취득한 학사 학위는 동시에 인문학부에서 가르칠 자격(magister)을 의미했다. 인문학부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상위학부인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에 학생으로 등록하기도 했다. 박사 학위을 따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래도 제대로 교육받은 이는 교회나 국가 기관 고용을 보장받았다. 대학 내 가장 큰 조직은 인문학부였다. 파리대학의 1362년 통계에 따르면, 인문학부에 441명의 교수가 있었던 반면, 신학부에 25명, 의학부에 25명, 법학부에 11명의 교수가 있었다.

12세기 이후 인문학부는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는 곳이었다. 논리학은 일찌감치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별 문제 없었지만, 그의 자연학 문헌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1210년에 상스의 대주교인 피에르 드 코르베이유가 소집한 주교회의는 "파리에서 자연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나 그것의 주석서를 읽으면 파문시키겠다"고 선포했다. 1215년에는 교황의 특사 로베르 추기경이 와서 그 금지령을 확대시켰다.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담긴 범신론적 측면이 기독교 신론과 상충되고, 우주 영원설이 창조론과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지령은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최신 지식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이해하는 것이 교육받은 이의 덕목이라고 많이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타리 이단과 싸우려면 지적 무장을 해야 하는데, 이에 필요한 자료를 공부하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공공연히 연구가 이루어졌다.

도미니쿠스 수도사이자 파리대학 신학부 교수였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200~1280)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저작에 주석을 덧붙였다. 그는 경험적 연구 방법의 선구자로서, 카타리파 이원론에 대항하기 위해 물질세계의 합리성과 아름다움을 입증할 구체적 경험 자료를 많이 수집하려 했다. 알베르투스에 따르면 자연에 대한 과학 연구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접근과 상충하지 않는다. 물론 우주 전체는 가장 보편적인 원리, 곧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도출된 것이지만, 개별 사물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경험이 확실하다. 각 영역에 고유한 연구 방법이 있어서, 다른 차원의 진리가 상충하지 않는다. 자연을 설명함에 있어서는 특히 그의 '이중 원인' 개념이 과학과 신학의 조화를 위해 유용했다. 창조주가 세계 내 사물로 하여금 그 내부 원인을 통해 작용하게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병아리가 닭으로 자라는 것은 자체 성장법칙을 따르지만, 그 모든 것의 존재는 외적 원인, 즉 창조주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닭의 성장 원인으로 자체 성장법칙을 말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창조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이해방식은 창조자를 자연 세계로부터 멀리 떼어놓아, 결국 신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표방할 우려가 있다. 이런 비판이 로저 베이컨(Roger Bacon, 1219~1292)에 의해 제기되었다. 베이컨은 옥스퍼드 출신으로서 파리대학 인문학부 교수였다. 그는 과학의 힘으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것이라 했다. 또 "노 젓는 사람이 없는 배, 잠수함, 자동차, 비행기" 같은 미래 기술문명도 예견했다. 그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이었는데, 여기서는 내세중심적 가치와 엄격한 과학 활동이 함께 강조되었다.

베이컨은 알베르투스가 직접 경험을 강조한 점은 옳지만, 과학과 기독교를 제대로 조화시키지는 못했다고 비판했다. 꿀벌에게 자기 역할을 수행할 힘이 자연적으로 주어져 있다 해서, 그런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될까? 베이컨이 볼 때, 자연과 초자연, 즉 과학적 실험 세계와 종교적 체험 영역을 연결하는 것은 빛(조명, illuminatio)이었다. 모든 학문의 문을 여는 열쇠는 '수학'이고, 이 열쇠로 열린 보물 상자, 즉 모든 철학의 꽃은 빛에 관한 학문, 즉 '광학'(optics)이었다.

그리고 베이컨은 학문이 본질적으로 종교적 작업이라고 믿었다. 빛은 평범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 권능이 나타난 것이다. 빛은 다른 사물의 운동을 야기하는 힘이며, 존재의 근원인 형상이며, 지식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조명이다. 그러므로 빛을 연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도상의 첫 걸음이다.

이런 베이컨의 입장을 도미니쿠스 수도사들은 퇴보로 보았다. 그들은 베이컨이 과학을 신비화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창조성을 제한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인간 지식이 하나님의 특별 조명의 결과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고, 대신 지식은 창조자가 인간에게 부여한 이성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과학의 독자성과 (조명) 의존성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 속에, 중세 학문은 무르익어 갔다.

안윤기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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