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을 추구하는 온전한 선교

샬롬을 추구하는 온전한 선교

[ 여전도회 ] 교회여성과 계속교육원 13

한국기독공보
2020년 08월 19일(수) 17:05
기사와 직접 관계 없는 이미지.
본회퍼는 값싼 은혜와 비싼 은혜를 구분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말씀에 복종하는 제자가 돼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자기 시대의 독일교회를 '회개를 요구하지 않는 용서의 선포', '훈련 없는 세례', '신앙고백 없는 성찬식', '십자가와 제자도가 없는 교회', '살아 계시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값싼 은혜가 판치는 교회'라고 경고했다.

이 값싼 은혜를 즐겼던 교회가 히틀러를 찬양하고 추종했으며, 독일군이 파리를 함락시키자 감사예배를 드리며 환호했다. 값비싼 은혜를 따라 히틀러와 나치정권에 불복하고 저항하다 고초를 받고 처형당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본회퍼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방식은 둘 중 하나인데, 하나는 내가 살고 그를 죽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고 했다. 동서고금의 많은 교회들이 자기의 영광과 성취와 득세를 위해 그리스도를 죽이는 길을 걸었다.

존 스토트는 '근본적인 제자(the radical disciple)'를 역설했다. 근본적(radical)이란 말은 라틴어의 '라딕스(radix)'에서 왔는데 이것은 본래 '뿌리'라는 뜻이다. 즉, 예수그리스도와 말씀에 뿌리를 박고 사는 사람이 예수의 제자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우려하듯이 한국교회도 현세적 영광과 성공과 번영을 추구하는 값싼 은혜에 취해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신학적으로 복음의 유일성을 회의하거나 부인하는 종교다원주의가 날로 힘을 얻고, 윤리적 상태주의와 사생활 불간섭 풍조에 묻혀 기본적인 선악도 구별하지 못하는 신종 야만인의 문화가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현실에 우리가 바로 서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들이 무엇을 하리오(시 11:3)'라고 했듯이 선교의 터전인 교회가 견고히 서지 못하면 건실한 선교운동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온전한 선교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교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모든 문화와 시대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선교는 하나님 나라를 목표와 내용으로 하고 그 방식은 성육신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쉥크(W.Shenk)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책인데 성경 전체의 목표는 구원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그와 모든 피조물 간의 온전한 조화를 의미한다. 구약의 모든 책들은 조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샬롬이다. 예수님의 설교의 요점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는 것이다. 누가복음 4장 43절에는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라고 하셨다. 그의 사역 전체를 간추려 묘사한 마태복음 9장 35절에는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다'고 했다.

피터 와그너(P. Wagner)는 '하나님의 나라' 또는 그와 같은 말이 마태복음에 52회, 마가복음에 19회, 누가복음에 44회, 요한복음에 4번 나오는데, 이를 보아도 예수님의 선교 주제가 '하나님 나라'였음이 명백하다고 했다.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의 온전한 조화(창 1:31)가 샬롬이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내용이라는 말이다.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에 샬롬이라는 말이 250회 나오는데 '구원', '평화' 또는 '완성' 이라는 세 가지 말로 번역됐다. 그러므로 샬롬을 추구하는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의 구현과 평화의 종말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포괄적인 사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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