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작은자복지선교회 출범

여전도회 작은자복지선교회 출범

[ 여전도회 ] 작은자운동 45년 : 작은자복지선교회의 교회사적 의미 6

이치만 교수
2020년 05월 04일(월) 11:59
1980년에 이르러 KNH의 후원을 받는 국내 시설은 10여 개나 됐다. 1981년 초교파 기구인 'KNH 한국협의회'가 구성됐고, 1982년에는 그 명칭을 '한독아동복지선교협의회'(약칭 '한아협')로 변경했다.

이 시기의 한아협의 모든 사업은 KNH의 후원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아협의 새로운 변화가 1985년부터 시작됐다. 그 중심에는 황화자 전도사가 있었다. 황화자 전도사는 1974년 예장 서울서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총무를 맡으면서 지역사회 선교에 나서게 됐다. 그리고 남양만의 KNH 후원 사업을 돕는 역할도 했다. 1983년 황화자 전도사가 미국 맥코믹신학교로 유학을 갔을 때 황광은 사모와 김유선 권사를 알게 됐고, 이들은 한아협 사업의 후원을 자임했다. 이 일을 계기로 황화자 총무는 국내 모금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깨닫고 국내 모금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1987년 국내후원자들이 새로운 조직을 결성했다. 후원회의 이름은 '작은자후원회'였다. 이 이름을 짓게 된 취지를 황화자 총무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우리 자신들의 아동복지 프로그램을 통한 선교적 자세는 어떠하였습니까? 이제는 지난날의 우리의 모습을 재점검하면서 지극히 작은자를 돕는 운동(To the least Movement)으로서의 한아협 사업이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재정립해야 할 때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 (중략) … 이 사업이야말로 생명을 사랑하는 선교이며 생명을 성숙케하는 선교의 한 형태입니다. 이 사업은 내 안에 있는 나는 할 수 없고 끊임없는 기도와 훈련을 통해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어 작은자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국내 후원자들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사업 재정의 대부분을 충당하는 것은 KNH였다. 그런데 1988년 KNH가 5개년에 걸쳐 후원금의 10% 감축한다는 계획을 알려왔다. 게다가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1990년 동서독이 통일에 합의했다. 이런 독일 국내 상황의 변화로 KNH의 재정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급기야 KNH는 애초의 5개년 동안 10% 감축안이 아니라 5개년 이내에 재정지원 종결을 통보했다.

KNH의 재정지원 종결 통보로 한아협 소속 시설들은 자립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한편 1986년 '작은자후원회' 출범 전부터 예장통합 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작은자운동'과 예장통합 총회 사회부가 전개하고 있는 '사랑의 현장갖기운동'은 서로의 성격이 매우 유사했다. 그리고 관계자들은 성격이 비슷한 두 사업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이 둘을 합치고 그 명칭을 '작은자복지선교회'로 명명하기로 했다.

이윽고 1991년 5월 27일에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작은자복지선교회' 창립총회를 열고 유의웅 목사(도림교회)를 이사장으로 황화자 목사를 총무이사로 선출했다.

창립 이후에 발간된 소식지 '선교와 사회복지' 제25호에 김희원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전 회장이 기고한 창립 축하의 글은 새로운 상황에 처한 '작은자운동'이 나아갈 길을 적절히 언급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독일 아동복지 선교단체의 도움을 입고 있었으나 이제는 한국교회 모두가 깊은 관심과 참여로 우리의 일로 삼아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아무리 작은 빛이라도 그 빛이 어두움을 밝힐 수 있음을 생각하며 주변의 작은자들에게 눈을 돌려 꿈과 용기와 믿음을 심어주는 일에 하나가 되어 이 사회를 밝혀야 하겠다. 작은자에게 한 일이 곧 주님께 하는 일임을 알려주시지 않았던가."

김희원 전 회장은 위의 글에서 '작은자운동'이 '우리의 일로 삼아 풀어가야할 과제'라고 표현했는데 얼마지나지 않아서 김희원 전 회장의 말이 실제의 일로 돼 버렸다. 즉 '작은자복지선교회'와 여전도회전국연합회와 합병하는 문제가 논의된 것이다. 두 기관이 합병하는 몇 가지 안이 제시됐지만, 결국 '작은자복지선교회'는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산하 사회복지기관으로 정하고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작은자복지선교회'로 하기로 했다.

1992년 병합 인수 작업을 거쳐 1993년 여전도회전국연합회의 총회에서 이 병합안을 인준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병합됐다.



이치만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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