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자운동의 아동복지사업과 어린이집의 원형

작은자운동의 아동복지사업과 어린이집의 원형

[ 여전도회 ] 작은자운동 45년 : 작은자운동의 사회복지 기여 9

김중호 교수
2020년 03월 17일(화) 17:30
청계천, 망원동, 남양만 등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어린이집 사업을 진행했던 것은 사회복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빈곤에서 야기되는 여러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린 자녀들의 보육서비스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소외되어 있던 빈민지역 주민들에게는 어린 자녀를 마음 놓고 맡기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아동보호 서비스를 찾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근지역 교회에서 제공되는 무료 어린이 돌봄 서비스는 주민들의 자립과 자활에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어린이들은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인지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다양한 경험과 학습의 기회를 접하면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의 아동복지 전문교육기관과의 협력과 교수들의 참여로 어린이집 사업을 체계화, 전문화 시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본다.

# 어린이집의 원형(原型)

김진홍 전도사는 청계천지역사회에서 어린이집(탁아소, 유아원, 유치원 등 용어사용의 혼재) 설립운영을 위한 전략을 세웠으며, 이대 사회사업학과,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등 전문교육기관과 협력해 진행했다. (아동시설의 용어정리:'작은자복지선교 40년사'에서 보면 탁아소, 유치원, 유아원, 어린이집 등의 용어들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어린이집은 보육시설이며, 주무관청은 보건복지부이고, 관련법령은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시행규칙이 있다. 유아원(유치원)은 교육시설이며, 주무관청은 교육부이고, 관련법령은 유아교육법, 시행령, 시행규칙이 있다.)

그 당시 청계천 답십리 거주민이 총 1만 2000세대 정도 됐기 때문에 3000세대에 1개의 어린이집을 계획했다. 그 결과 이 지역에는 4개의 어린이집이 세워졌다. 이 어린이집에서는 4세부터 6세까지의 어린이들이 무료로 돌봄을 받았다.

1973년 7월 13일 설립된 활빈제1어린이집(원장 이화여대 이효재교수)에서는 70여 명의 어린이가 오후3시~5시까지 보육과 교육, 그리고 영양균형을 고려한 식사와 간식 등을 지원받았다. 1973년 10월 20일에는 활빈제2어린이집(장미어린이집, 원장 주정일교수), 1973년 11월 20일에는 활빈제3어린이집이 설립, 운영됐다.

1980년 KNH후원을 받는 국내시설들은 10여개나 됐다. 이 시설들은 화성군 남양만 간척지, 인천, 제주, 성남 등지로 퍼져있었다. (중략) "그때까지는 불모라고 생각했던 도시저변 노동자들에 대한 선교 특히 농촌 선교활동에, 최근 한국에서 탁아소 활동을 가장 효과적인 매개수단으로 채택하기 시작한 것은 활빈교회의 성공을 본받았기 때문"(밀알회 회보 13호 4)이라는 노무라 목사의 평가가 있듯이 이 지역의 탁아사업은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2019년 현재 어린이집의 현황을 보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어린이집은 3만9171개소(국공립어린이집:3602개소, 민간어린이집:1만 3518개소, 가정어린이집:1만 8651개소)가 되며, 어린이집의 보육아동 수는 총 141만 5742명이다. 오늘날 어린이집은 빈곤가정뿐 아니라 중산층 일반가정의 아동양육기능과 교육기능을 도와주는 사회복지시설로 제도화가 되었다. 어린이집 사업은 영유아보육법(1991년 제정, 2019년 개정시행),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의 법령으로 제도화되었다. 2020년 지원예정인 어린이집 예산규모는 총 2조 328억원이다.

어린이집은 작은자운동의 초창기사업으로서 빈곤지역사회에서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의 직업 활동을 도와주는 시범사업이 됐다. 어린이집은 가정을 대리하는 아동양육기능과 교육기능을 맡아왔으며, 오늘날 어린이집 제도의 원형(原型)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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