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제도를 판단하는 올바른 기준

대입제도를 판단하는 올바른 기준

[ 특집 ]

김영식 대표
2019년 12월 11일(수) 00:00
대학 신입생을 뽑는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교육부가 얼마 전 대입의 공정성을 높이겠다며 주요 대학의 정시 모집 비율을 40% 이상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두고 교육단체나 학교 현장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면 모두가 환영할 일인데, 학교 현장마저 반발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떤 입시제도가 더 나을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우리나라 대입제도를 이야기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은 대입제도가 단지 신입생을 선발하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올림픽에서 승자가 누구인가를 가리는 기준을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록이 빠르거나 상대와의 경기에서 이기는 게임의 룰을 정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대입제도는 초중고 교육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은 옆 사람과 치루는 경기가 아니라 각자 개인의 인격도야와 성장의 문제이므로, 교육이 그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대입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 대입제도를 결정하는 것은 단지 게임의 룰을 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다.

우리나라 대입 전형은 수능을 중심으로 선발하는 정시모집과 학생부를 중심으로 선발하는 수시 모집으로 나눌 수 있다. 학생부를 중심으로 하는 전형은 내신 성적을 중심으로 하는 학생부교과전형과 내신 성적 외에도 학교생활에 대한 종합적 기록을 반영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있다. 현재의 논란은 바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정시 모집은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수능 성적만을 가지고 합격생을 가르기 때문에 점수가 1점이라도 높은 사람이 합격한다는 면에서 공정하다. 그러나 수능 중심의 정시 전형이 가진 절차적 공정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점이 있다. 우선은 국가 표준화 시험이 너무 큰 영향력을 가질 때 교육은 획일화된다.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학생들에게 똑같은 내용을 가르치고 하나의 기준으로 시험을 치루게 되면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적합한 교육일 뿐, 다른 재능을 가진 수많은 학생들을 패배자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오지선다형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지식의 본질을 탐구하기보다 문제를 잘 푸는 공부에 치중하게 되고 정작 학생이 길러야 할 다른 역량은 기르기 어렵게 된다. 문제를 잘 풀기 위한 사교육도 늘어나게 되었다. 수능 중심 전형이 초래하는 오지선다형 객관식 EBS 문제집 풀이식의 공부가 미래 역량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결정적 한계 또한 분명하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학습법이 개인에게도 유익했다고 할 수 있으나, 지식의 양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는 오히려 불리할 수 있어서 미래형 학습과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는 과거 수능 문제집 풀이에만 매달렸던 교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허사가 되는 정시 확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학종의 기원은 참여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시에서 수능 점수 1점 차이로 학생을 변별하기보다는 학교생활에 대한 종합적 기록을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학교교육도 정상화하고 학생의 잠재력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관점이 대두하였다. 이를 위해 입학사정관제가 제시되었고, 현재의 학종으로 발전하였다.

근래에 들어 수시모집의 비율이 70% 이상이 되었고, 특히 서울 주요 대학의 학종 선발 비율이 증가했다. 학종은 2019학년도 기준으로 약 24%, 학생부교과전형은 41%, 수능 전형은 21%, 논술 4%, 실기 8% 정도 수준이고, 상위권 대학은 학종 비율이 더 높다. 학교는 이런 변화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동안 수능 문제집 풀이에 골몰하던 교육에서부터 조금씩 벗어나 수업의 변화를 도모하고, 동아리 활동 등을 활성화할 여지가 생겨났던 것이다. 또한 학종의 확대로 지방 학생이나 일반고 학생이 상위권 대학에 합격하는 비율이 올라간 것도 긍정적인 효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학종 확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문제는 학종의 주관적인 정성평가적 성격이었다. 학종은 기본적으로 교사의 관찰과 기록을 대학의 입학사정관이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내신 성적과 같은 정량적 점수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성적이 조금 낮더라도 학생의 열정이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여 선발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학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고등학교와 대학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데 있다. 객관식 점수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 평가의 과정에는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무언가 부정이나 왜곡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있다. 또 내신 경쟁은 기본이고 교과 외에도 동아리, 봉사활동, 각종 대회 등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부담도 불만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다.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도 있다. 학종의 평가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 부모의 경제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논리다. 실제 부모의 영향력으로 봉사활동이나 인턴 활동, 동아리 활동 등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기 소개서를 만들어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반면, 학교 현장에서는 학종 전형 때문에 학교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써 오히려 보통 학생들의 인문적 소양을 높여 준 측면이 있고, 실제 일반고등학교에서는 수능 정시보다 학종을 통해 원하는 대학에 가는 학생들이 더 많기 때문에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교사들이 많다.

대입 정책을 논의하는 것은 누가 좋은 인재인가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대학이 좋은 인재를 뽑는 과정이 대입 전형이고, 고등학교에서 좋은 인재를 길러서 대학에 보내주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입 정책을 판단하는 기준도 어떤 전형이 좋은 인재를 기르도록 하는가, 그리고 좋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세워야 할 것이다.

좋은 인재는 한 줄 세우기로 길러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가진 재능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도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고 할 뿐, 달란트 간의 우위가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각자의 달란트를 개발하도록 학교 현장에 다양한 교육을 촉진하는 대입 전형이 어떤 것인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선발의 과정이 가진 속성상 줄세우기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해도 한 줄보다는 가급적 여러 줄 세우기가 가능한 대입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5지선다형 문제의 틀 속에서 하나의 정답을 찾는 학습으로 좋은 인재를 기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떤 대입 전형이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내도록 촉진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좋은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도 한 가지 기준만 세워서는 곤란하다. 회사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 새로 뽑힌 사원이 성실성, 창의성, 사회성, 업무능력, 인성 등 여러 요소를 기준 삼아 시험과 면접, 삶의 이력, 집단 토론 등 다양한 채용 방법을 동원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대학도 시험 성적이 1점 높다고 좋은 인재라 생각하지 않는다. 성실성, 창의성, 전공적합성, 학습 능력 등 여러 요소를 가지고 인재를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요소를 통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험이나 여러 요소를 심사하는 전형 중 하나라도 만들어야 교육이 살아날 수 있다.

김영식 대표/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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