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능력, 창조 자유 해방 공의 정의

성령의 능력, 창조 자유 해방 공의 정의

[ 특집 ]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 - 신학적 관점에서

김도훈 교수
2024년 09월 28일(토) 04:10
제 109회기 총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를 주제로 삼았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볼 때 매우 적절한 주제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왜 다시 이 주제를 되새겨야 하는가? 그만큼 교회가 위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회의 본질과 정의를 말할 때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을 제시한다. 이것은 성경과 신학적 전통이 말하고 있는 교회의 정의이고 본질이다. 교회는 이에 대한 재인식과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우리'(에클레시아)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며, 성령의 전임을 인지하고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널리 퍼져 있다. 무신론자나 비신자들 사이뿐만 아니다. 교인들조차도 교회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교회의 의미를 다시 가르쳐야 한다. 교회는 냉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임을, 그래도 교회가 여전히 희망임을 말이다. 바울이 강조한 대로, 교회는 천상에 있는 어떤 관념적 이상적 공동체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며 신앙의 훈련을 받는 바로 그 공동체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듣고 성만찬에 참여하며, 내가 직임을 맡아 봉사하고 있는 바로 그 교회가 교회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교회를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우리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완전해서가 아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해서도 아니다. 아무런 오류나 실수가 없어서도 아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의 전이기 때문이다.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서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라고 지칭하지 않았는가. 교회의 회복과 소성과 부흥은 바로, 보이는 이 교회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데서 시작한다.

총회의 주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이라는 단어다. 이것은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오로지 성령의 능력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한번 한국 교회에 부흥이 불일 듯 일어나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회개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예배에 진력한다면, 그리고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으로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선다면, 한국 교회의 부흥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부흥의 사전적 의미는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죽었다가 다시 깨어남' 등이다. 이런 사전적 의미의 부흥을 성경적 단어로 바꾼다면 아마 소성(蘇醒)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릴 것이다. 부흥을 언급하면서 사도행전의 교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교회 부흥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부흥과 갱신 역시 성령의 능력이고, 성령의 역사다. 사도행전뿐만 아니다. 교회 역사에 나타난 많은 부흥 운동도 결국 성령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위기 상황이 무엇이든 희망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에 있다.

이제 교회 부흥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차례다. 부흥의 정의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것은, 거듭 말하지만, '성령의 역사'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선언하신 약속된 성령을 기다리며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사도행전의 서두는 그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기록한다. 기도하는 그들에게 약속으로 주어진 성령이 임하였고 그들은 다 성령으로 충만하였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드라마에 성령이 능력으로 임했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성령의 능력은 창조와 자유와 해방과 공의와 정의를 가져오는 능력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리고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는 영이며, 비전과 사랑과 관계와 사귐의 능력이며, 위로와 치료의 능력이시다. 또한 칭의의 영이며 성화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에 사로잡힌 교회는 끊임없이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간구하는 공동체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을 회개하며 갱신해 가는 공동체이고, 이 세상에서 중생과 새 창조의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이며, 자유와 해방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공동체다. 나아가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예수를 증언하는 증인공동체이며,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며, 불의의 세계 속에서 공의를 존귀히 여기는 공동체이다. 이 모든 것은 교회가 성령에 의하여 만들어졌으며 성령의 임재해 계시는 곳이므로, 언제나 성령의 능력과 역사를 드러내는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는 섬김과 사귐과 나눔이 있어야 하며, 성령이 함께 하시는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 성령의 교회는 성령의 선교와 명령에 봉사해야 하고, 성령의 위로하심에 따라 사랑과 위로가 넘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연합과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화해와 용서의 신비를 교회 안팎으로 충만케 해야 하며, 진리와 진실에의 용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교회는 온 우주만물을 향하신 성령의 치유하심과, 사랑하심과, 생명의 수여자 되심을 인정하고 피조물을 향하신 하나님의 영에 사역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자신에 대해 결코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소망과 기쁨의 공동체로 인식한다. 성령님은 오늘도 연약한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하나님께 간구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는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선포해야 한다. 구원의 기쁜 소식과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가 아니면 어디서 들을 수 있겠는가.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며, 또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필자가 애송하는 말로 글을 마무리 하려한다. "숨을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dum spiro spero)."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한국 교회는 무력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살게 하시고, 담대함을 주시며,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의 현존과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절망이 절망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죄다. 바울은 한국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소원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자신에 대해 결코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소망과 기쁨의 공동체로 인식한다. 성령님은 오늘도 연약한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하나님께 간구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는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선포해야 한다. 구원의 기쁜 소식과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가 아니면 어디서 들을 수 있겠는가.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며, 또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김도훈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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