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은 계속된다!

여정은 계속된다!

[ 주간논단 ]

이은주 목사
2019년 04월 23일(화) 10:00
"행복합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을 생각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그들이 메마른 계곡을 지날 때 거기에서 샘물이 솟으며 봄비는 축복으로 덮어 줍니다. (시편 84: 5~6)"

연록의 새잎으로 세상은 신비롭다. 봄날의 작고 여린 생명들이 비바람을 견디며 성장하여 열매를 얻는 것은 또 얼마나 신비로운가. 모든 생명은 자신의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하나의 '여정(journey)' 위에 있다. 길 위의 여정과 순례! 여정이란 뭔가를 욕망하거나 추구할 때 시작되며 기대와 가능성에 열려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린 그 여정의 의미를 알게 될 만큼 성숙하게 된다. 사회적 영성도 하나의 여정으로 이루어진다. 사회적 영성이란 인간의 관계, 사건, 사회적 차원의 경험을 통하여 신의 뜻을 찾으며 공동체의 건강한 변화를 추구하는 영적 활동을 의미한다. 사회적 영성에서 기대되는 여정의 끝은 공동체나 사회의 변화일 것이다. 당연한 표현이지만 끝을 향해 움직이는 여정이 지속될 수 없다면 '변화'도 기대되지 못한다.

장-뤽 마리옹의 '에로스 현상'이란 책이 있다. 사랑의 여정 (고리 circle)에 대해 현상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나를 사랑해줄 누군가를 찾는' 욕망에 이끌려 에로스의 여정은 시작되며 누군가와의 일치를 욕망하며 지속된다. 물론 벗어나고픈 수많은 유혹이 함께 한다. 사랑하기 어려우며 예측하기 어려운 상대방,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서, 불확실성 사이에서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 등 이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 그 고리로부터 이탈하면 에로스 현상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어려움을 딛고 사랑의 결단과 의지를 표할 때 다시 에로스 현상으로 채워진다.

결단! 세계에 에로스가 들어오는 통로인 것이다. 수없이 이어지는 결단과 함께 텅 빈 공간은 에로스와 희망의 변주곡들로 채워진다. 정의와 공의가 세워지는 변혁의 여정도 에로스와 마찬가지 아닐까. 건강한 공동체와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불의를 증언하는 사람들, 이들이 사회의 변화를 꿈꾸기에 여정은 시작되고 지속될 수 있다. 이 여정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장애들이 있지만 이를 이겨내고 그 여정을 지속한 이들이 있기에 세상엔 정의와 공의가 스며들고 변화의 열매들이 맺히게 되는 것이다.

한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이 있다. 사건들은 우리를 새로운 주체로 변화시키는 하나의 여정을 낳는다 (사건→자기 계시→여정의 시작→기억과 해석→결단과 실천→새 주체의 탄생). 세월호 참사란 2014년의 사건이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세월호 5주기를 맞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한편에선 "세월호 지겹다"는 조소와 갈등이 여전하다. 하지만 이런 방해와 어려움을 딛고 지난 5년 세월호 이후의 사회 건설이란 꿈의 여정을 지속하여 걸은 이들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세월호의 여정'을 멈추려는 온갖 방해에도 유가족들은 시대의 증언자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왔다.

교회는 그들에 대해 연구하고 연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사회적 망각'과 '용서'만이 화해의 길이라는 말로 아픔을 덮으려 해서는 안된다. 진상규명을 위한 물음의 행위들은 그 자체로 안전사회 건설의 단초가 되며 치유와 회복의 출발점이 된다. 참사의 원인과 과정을 묻고 투명하게 밝히기 위해 '멈추어 선 시간'의 분량만큼 한 사회는 성숙해진다. 이 멈춤을 존중하자.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유가족들과 함께 질문하고 규명하며,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들에 더욱 환하게 불을 밝히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까지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의 땅 위에 우리 자녀들의 안전한 미래를 세우자. 그리고 이를 위한 길 위에서 우리 함께 외치자! 세월호의 여정은 계속된다!



이은주 목사/한국여신학자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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