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법은 ... 겸손한 목회자 상 회복

해법은 ... 겸손한 목회자 상 회복

[ 시론 ] 또 다시 불거진 '그루밍 성폭력'

김승호 교수
2018년 11월 13일(화) 10:15
그루밍 목사, 무엇이 문제인가?

요 며칠간 '그루밍 목사' 혹은 '그루밍 성폭력'이란 검색어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인천의 모 교회 청년부 목사를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글 때문이다. 원래 '그루밍'(grooming)이란 몸단장 혹은 동물이 자기 털을 핥아 길들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성범죄와 관련해서 그루밍은 '심신이 취약한 자를 전적으로 돌봐 줌으로 신뢰관계를 형성한 후 성적 행위를 강요하는 수법'을 말한다. 가해 목사에 의해 지난 10년 동안 열 명 이상의 청소년들(직접 피해 사실을 밝힌)이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잊을 만 하면 나타나는 목회자의 성폭력,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이번 그루밍 성폭력은 담임목사인 부친의 권위를 등에 업은 부목사가 해당교회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오랜 세월 범죄행각을 벌여온 파렴치한의 경우이다. 2010년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 발생 당시 필자는 기윤실이 주최한 목회자 성윤리 포럼에 발제자로 참여한 바 있다. 한국교회의 차세대주자로 교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전 목사 역시 자신이 지도하던 청년을 대상으로 저지른 성범죄라는 점에서 일종의 그루밍에 속한다. 이처럼 드러나는 양상은 다르지만,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은 대부분 그루밍 성폭력으로 분류된다.

새천년에 들어온 후 반복적으로 발생되는 목회자 관련 비윤리적 사건들은 교회성장시대를 거치면서 과도하게 높아진 목회자의 초월적 지위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 한국교회는 70~80년대의 개척목회자들이 은퇴하고 후임목회자들이 청빙됨으로 무소불위의 강력한 카리스마 리더십이 퇴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강력한 카리스마의 왜곡된 사용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목회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오랜 세월 한국교회에 뿌리내린 '주의 종' 의식은 일반성도와는 다른 '특별한 계급'로서의 목회자 지위를 강화했다.

성직자와 일반 성도를 이분법적인 수직적 개념으로 수용했던 중세교회의 망령이 여전히 한국교회에 잔존해 있다. 초월적 지위를 가진 특별한 신분으로서의 성직자 개념은 성도들의 주체적 신앙 형성에 기여하기보다는 과도한 목회자 의존적 신앙을 결과했다. 물론 특별한 존재로서의 자기정체성은 소명 받은 목회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영역에서나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목회자도 예외는 아니다. 과도한 파워는 스스로 예외적인 인간이라는 의식을 강화하고, 이런 의식이 사회통념상 일반적인 윤리기준을 초월하는 존재로서의 자기인식을 형성한다. 초월적 존재로서의 자기인식은 다시금 목회자 스스로 주어진 파워의 남용에 과도하게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무감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쉽게 주어진 파워의 남용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곧 성적 탈선이다. 그러기에 한국교회는 더 이상 목회자를 '완벽한 모델'로 상정하지 말아야 한다. 목회자는 단지 '목회자의 직분과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록 높은 수준의 인격과 도덕성이 요구되지만, 목회자는 완벽한 존재여서 목회자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목회자는 영적 지도자이기 이전에 성적 정체성을 가진 한 인간임을 직시해야 한다. 목회자에 대한 이런 인식은 '목회자 우상화'를 방지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목회자에 대한 성도들의 과도한 기대가 목회자에게 가면을 쓰게 하듯이, 목회자의 '영웅 신드롬' 역시 스스로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교회성장시대를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목회자 상을 이상적 목회자 상으로 확립했다. 이제 우리는 탈근대 맥락에서 요구되는 겸손한 목회자 상을 회복해야 한다. 목회자의 그루밍 성폭력을 현상적 차원에서만 고려하는 것은 땜질식 대책에 불과하다. 목회자는 스스로 완벽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성도들 앞에서 행해 온 어설픈 연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삶의 모순 가운데 때로 좌절하면서도 성도들과 함께 주의 뒤를 따라가는 순례의 동반자임을 고백할 때, 목회자는 성도 개개인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격체로 존중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김승호 교수 / 영남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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