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 균형잡힌 신앙커뮤니케이션에 도움

기호학, 균형잡힌 신앙커뮤니케이션에 도움

[ 신학플러스 ] 기호학과 신학의 만남

고원석 교수
2018년 07월 27일(금) 12:21
퍼스의 기호학

첫째, 사고로서 기호. 퍼스는 모든 인간의 사고가 기호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현실 세계는 기호체계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언제나 기호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인식한다. 인간은 기호로 지각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일종의 기호적 존재다.

둘째, 기호의 삼중구조(삼각형). 특히 퍼스는 기호를 삼중적(triadic) 관계구조로 이해한다. "모든 사고의 의미는 사고의 대상을 규정하는 기호(=약호)의 삼중적 관계에 의해서 확립된다." 퍼스가 말하고 있는 삼중적 관계란 약호(표상체), 대상(object), 그리고 해석체(의미/interpretant)로 이루어진 관계를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료 코카콜라를 예로 들면, 코카콜라 "로고" 가 약호라고 한다면, 그 약호가 지시하는 톡쏘는 흑갈색의 "음료"가 대상이 된다. 그리고 약호를 바라보는 사람의 의식에 생기는 "개념"이나 "의미"(정열/갈증/달콤함)가 해석체다.

셋째, 기호의 삼중적 조건. 기호의 삼중 관계는 기호의 삼중적 조건(특성), 즉 재현적, 표상적, 해석적 조건을 통해 분명해진다. ①재현적 조건이란 기호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 대상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단어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 "예수 그리스도"를 재현한다. ②표상적 조건이란 기호가 대상을 재현함에 있어서 대상 전체가 아닌 특정한 측면을, 하나의 관점에서 대상을 부분적으로 표상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할 때 "어린양"의 측면(희다/순결하다)에서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약호는 대상을 재현할 뿐만 아니라 대상을 제한한다. ③마지막으로 해석적 조건이란 기호가 기호로 기능하기 위해서 기호는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호는 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번역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교회의 타종소리에 예배자들은 "예배의 시작"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머리를 숙이게 된다.



기독교신앙의 이중적 신앙형태 문제

퍼스는 기호를 약호-대상-해석체(의미)의 삼중 구조로 이해한다. 기호의 삼중 구조는 결코 이중 구조로 환원될 수 없다. 퍼스의 이론을 기독교신앙에 적용해 본다면, 기독교 신앙은 약호-대상-해석체의 삼중구조로 이루어진다. 기독교신앙의 삼중적 구조는 결코 이중 구조로 환원될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약호-대상-해석체의 세 요소 중 하나가 빠진 채 이중 구조로 환원된 신앙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첫째, 근본주의 신앙: 약호와 대상의 기호화. 이중 기호관계의 첫째 형태는 약호와 대상의 관계를 강조하는 반면, 해석체를 기호작용에서 배제시킨 기독교 신앙이다. 보통 전통적인 교리신앙과 근본주의 신앙에서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퍼스의 기호과정에 따르면, 약호는 대상과 관계 속에서 의미(해석체)를 분출시키고 그 의미는 새로운 약호로 발전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교리신앙과 근본주의 신앙에서는 해석체가 배제되기 때문에 새로운 약호로 발전할 길이 차단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자주 나타나는 근본주의적 신앙은 신앙의 기호작용 안에 해석자의 참여를 배제하기 때문에 신앙기호의 소통과 발전을 차단시킨다. 근본주의적 신앙에서 볼 때, 개인 해석자들의 참여는 신앙본래적 의미를 훼손시킬 수 있는 걸림돌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석체(해석자)의 중재없이 약호가 그 대상을 전적으로 표상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죄의 교리에 있어서 전통적-근본주의 신앙은 원죄교리를 해석자들에 대한 고려없이 가르치고 수용하게끔 한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왜 죄인인지 깊은 반성과 자의식없이 원죄 교리를 (규칙차원에서) 받아들인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의 구원사건도 개인의 실존적 의미체험(해석체)없이 교리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죄의 고백, 그리스도 구원의 실존적 체험없이 벌어지는 일반화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둘째, 종교신학: 대상과 해석체의 기호화. 이중 기호관계의 둘째 형태는 대상과 해석체의 관계에 주목한 나머지, 약호를 기호작용에서 배제시키는 기독교신앙의 형태다. 의미체는 보편적인 대상과 관련을 맺는 반면, 구체적인 약호의 현상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 형태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종교다원주의, 또는 신중심적 종교신학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종교철학자 힉(J. Hick)은 세계종교를 "유일신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서로 다른 응답"이라고 보았다. 또, 스페인의 종교철학자 파니카(R. Panikkar)는 종교의 "초월적 원칙"을 제시했다. 초월적 원칙이란 모든 세계종교들은 동일한 근원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중심적 종교신학이 가지고 있는 원칙은 궁극적인 본질(대상)로서 신과 다양한 전통과 현상(약호)으로서 종교체계를 분리시킨 뒤, 다양하고 변화하는 전통과 현상(약호)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궁극적인 본질만을 관찰대상으로 삼아 그 대상의 의미(해석)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논리에 따르면, 기독교의 '하나님', 유대교의 '야훼', 그리고 이슬람의 '알라'는 동일한 "신적 존재"(神)를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경우 하나님의 존재는 일반화되고 추상적인 존재로 전락하며 하나님에 관한 성경의 생동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셋째, 유명론: 약호와 해석체의 기호화. 이중적 기호관계의 셋째 형태는 약호와 해석체의 관계를 강조하는 반면, 대상체를 기호작용에서 배제시키는 기독교신앙의 형태다. 이것은 첫째 형태인 전통적-근본주의적 견해와 정반대측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약호가 내게 의미하는 바에 주로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근본적으로 어떤 대상을 재현하고 있는가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이러한 견해들 배후에는 소쉬르(F. Saussure)의 유명론적 입장이 자리하고 있다. 소쉬르의 기호론은 기호를 기표(약호)와 기의(해석체)의 이중관계로 이해한다. 그런데 소쉬르에 따르면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그 어떤 필연적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책'이라 할 때, 기표인 '책'은 책이란 본질과 상관이 없다. 기호 사용자에 의해 자의적으로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신앙적 기호와 상징(예: 하나님)의 대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론적 입장은 신앙 기호와 상징의 실재성(Reality)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퍼스는 약호-대상-해석체의 관계 구조 안에서 유명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재론을 끝까지 지지한다.



신앙의 균형: 다양성과 실재론 사이에서

퍼스의 기호학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퍼스의 기호학은 신앙의 다양성을 호소한다. 삼중적인 기호작용은 새로운 기호를 끊임없이 산출해 냄으로서 의미의 확산과 다양성을 도모한다. 하지만 퍼스의 기호학은 기호의 삼중과정 속에서 대상의 실재를 고수함으로써 중심을 향한 수렴을 도모한다. 퍼스의 기호학은 현대 기독교 신앙의 균형을 위한 틀걸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원석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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