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시대, 교회는 어떤 공동체를 제공할건가

고독의 시대, 교회는 어떤 공동체를 제공할건가

[ 연중기획-인공지능시대를읽다 ] (12)4차 산업혁명시대의 신, 신앙, 공동체

조성돈
2018년 07월 27일(금) 10:29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들은 기계가 아니라 정말 인간과 같은 그 무엇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을 통해서 빅데이터를 취합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심지어 창조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동안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했다면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와 판단, 심지어 창의력까지 대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더 발전하면서 인간의 능력 이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사람의 정신도 데이터화 된다면 대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신체를 대체하고 의식과 정신마저 대체하게 된다면 인간은 '불멸'하게 될 것이다. 이제 곧 인간의 정신을 데이터화하여서 저장할 수 있다면 신체와 정신이 계속적으로 유지되어 죽음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을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더 나아가서 죽음을 맞이하기는 할 것인가. 좀 더 근본적으로 살펴본다면 그러면 그것은 인간일까.

인간에 대한 질문은 결국 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고, 죽음을 초월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그것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알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다시 말해 전지전능(全知全能)한 그 무엇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이름해야 할 것인가. 이 익숙한 레토릭에 우리는 무어라 대답을 해야할 것인가.

현재는 약한 인공지능이 실현됐고, 강한 인공지능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태이지만 레반도브스키가 예상하듯 곧 초월적 인공지능이 완성되어 초월적 존재로서 인간을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제 이 초월적 존재에서 무엇을 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이제까지 기술이 인간을 위한 도구였다면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기술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 입장이 될 것이다. 초지능이 실현되어서 인간 이상의 존재로 자리하고 인간의 마음까지도 연결하고 컨트롤하게 될 때 인간은 자신의 자리 뿐만 아니라 자신이 신앙하던 신의 자리까지 내어주어야할지 모른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가면서 공동체에 대한 재정의도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조직과 단체의 개념을 벗어나고 있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은 인터넷에 기반된 플렛폼의 형성이다. 현재 가장 많은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소셜 미디어인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리고 인스타그램은 왠만한 국가들보다 그 규모다 더 크다. 이제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온라인상태에 있으며 어딘가에 접속되어 있는 이 세대는 오히려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제는 꺼리고 있다. 이 부분은 신앙공동체에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다.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교회의 모습은 무너져 가고 있다. 주일예배,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자치회 모임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교회의 형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철저히 개인주의화된 개인과 그에 맞추어 변화된 사회에서 이런 형태의 공동체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학원복음화협의회의 조사에서 청년들에게 대학, 청년부를 떠올리면 드는 느낌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공동체적'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55.5%가 되었다. 그리고 '친교적(코이노니아)'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40.1%가 되었다. 또 다른 질문으로 대학, 청년부의 이상적인 모습은 어떤 것이가를 물었는데 여기서도 '공동체'라는 대답이 1위로 51.8%나 나왔다.

이 부분을 특이하다고 한 것은 앞에서 보듯이 청년들이 급속도로 개인주의화되고 있는데 '공동체'가 이들에게 하나의 이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로 대립될 수밖에 없는 개념인데 현재 제4차 산업혁명을 당겨서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서 연합되고 있다.

가족마저 부담스러워서 1인가구를 형성해서 혼자 살고 있는 청년들이, 내가 벌어서 온전히 나를 위해 쓰고, 인생을 즐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화려한 싱글'을 꿈꾸는 청년들이 공동체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요즘 청년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는 소셜다이닝이나 셰어드하우스이다. 소셜다이닝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오프라인 번개와 같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다. 가족도 회피하고 친구도 회피했던 사람들인데 아무 연고없이 만나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부담없이 흩어지는 것이다. 셰어드하우스는 한 집에서 그냥 여러 사람이 방을 나누어서 사는 것이다. 대체가족의 형태를 띄는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조건을 맞추어서,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서 함께 사는 형태이다.

이들은 개인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도 '식구'의 정서를 경험한다. 결국 이 미래세대가 생각하는 공동체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전혀 다른 개념일 수 있다.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개인이 없어지고 공동체에 편입 내지는 녹아지는 것을 공동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미래세대들에게는 개인주의화된 각 1인의 연합체를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동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얼마 전 온라인 상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스토리펀딩(Storyfunding)'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스토리펀딩은 기부와는 다른 개념으로 제안자가 나서서 어떤 이야기를 끌고 가면 사람들이 그 일을 위해서 재정적 펀딩을 하는 것이다. '청소년 자살'이라는 특별한 주제를 단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은 모이기 시작했다. 설교를 대신하여서 제안자들에 의해서 스토리가 전해졌다. 그 이야기에 감동한 사람들은 결단을 하고 행동으로 연결했다. 그들은 펀딩에 참여하여 돈을 내기도 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자신들의 마음과 자신들의 숨겨 놓았던 과거까지 내어 놓았다. 심지어 이 이야기들은 총 467회 공유되었다. 감동이 된 사람들은 전도를 하듯이 이 이야기들을 자신들의 사이버 공간으로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서 직접 펀딩으로 헌신한 사람들이 455명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참여한 사람들은 펀딩한 돈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이들을 보면서 사회적 공헌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한 교회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명확히 다르다면 대면되어지는 공동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이버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종교가 주는 의례, 이야기, 감동, 참여, 헌신 등을 비슷하게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교회의 형태도 이와 비슷하게 전개되지 않을까하는 상상을 해 보게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 예배 공동체 설교에 대해서 탐구한 김병석은 설교가 인공지능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신앙공동체 안에서 불러와야할 신비적 역동성을 지닐 수 없기에 한계를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기술에 의해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신의 자리에 기술을 앉혀 놓은 인간에게 과연 '신비적 역동성'이라는 전제가 어떤 의미일까. 인간과 신이라는 신앙공동체의 전제조건을 잃어버린 앞으로의 세대에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결국 우리가 수용해야할 공동체에 대한 실제적인 대안이 없다면 신앙공동체 자체가 그 존립에서 큰 위협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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