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할 길

아직도 가야할 길

[ 땅끝편지 ] 베트남 강영미 선교사(6)

강영미 목사
2018년 07월 24일(화) 10:40
안식년 동안 신약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남편 문병수 선교사와 필자 강영미 선교사.
'안식년' 이란 말은 안식년을 누리고 나서야 말할 수 있는 단어다. 선교사들에게는 안식년을 준비하는 일 조차 일종의 부담스런 과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지만, 우리는 파송교회의 분쟁으로 후원이 중단되면서 교인들의 기도와 후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느끼는 안식년이 됐다. 한편으로는 레위인의 먹이는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임을 확인했던 기간이기도 했다.

두 아이의 입시를 치러야 했고 당장 생계가 해결돼야 했던 시기다. 남편 문병수 선교사는 그 기간 병원에 취직했고, 휴일을 이용해 평택대학교에서 신약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그 기간 남편은 필자에게 신대원 과정을 권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 선교사 재교육 차원이라고 제안했다. 나는 46세에 늦깎이로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늦게 시작한 신학이 이리도 달고 꿀같을 줄을. 고작 신학의 맛만 보았지만 내가 서있었던 과거, 오늘, 그리고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선교사라는 꿈과 뜨거운 열정만 있었던 나를 하나님은 학문적으로 손보고 다듬어 주셨다. 신학은 모든 학문의 시작을 넘어 삶의 시작인 동시에 모든 것의 종결이었다. 신학을 배우는 동안 나는 모처럼 살아있다고 느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한편, 문 선교사는 병원에서 근무해 4인 가족의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자신도 공부를 해야 했다. 게다가 한 교회의 베트남 예배부를 맡아 5년 동안 섬기면서 1인 4역의 고된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나는 자녀의 입시를 치르고 신학을 하며, 교육전도사로 5년 동안 두 곳의 교회를 섬겼다. 충성스런 집사로서 섬겼던 교회, 선교사인 나를 섬겨 준 교회, 그리고 사역자로서 섬기는 교회는 또 달랐다.

어찌됐든 우리는 5년 동안의 안식년을 알차게 보냈다. 남편은 신약학, 나는 선교학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신학을 통해 세상에서 교회가 갖는 책임과 그 영향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배움이 내게 있어서 안식년의 가장 큰 은혜였다.

우리 부부는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돌아갈 베트남 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떤 선교적 관점으로 그 땅을 다시 밟을 것인가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식년을 지나면서 선교교적 관점과 방향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안식년의 장막을 거두면서 다시 밟아야 할 그 땅, 베트남은 아직도 가야할, 바로 그 길이었다.

강영미 목사 / 총회파송 베트남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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