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장로 '35년 만의 기도응답'

박광희 장로 '35년 만의 기도응답'

[ 오피니언 ]

박광희 장로
2017년 10월 23일(월) 14:00

35년 만의 기도응답
나는 초등학교때 부터 마을있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서울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전까지 농번기가 되면 주일성수 하기가 어렵곤 했다. 고등학교 진학으로 서울로 상경한 나는 매주 교회에 나가 예배하는 것이 감사했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장애는 오히려 가정을 꾸려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믿음의 아내를 만났지만 신앙은 우리 부부의 큰 시련이기도 했다. 결혼 전에 문제시 되지 않던 제사가 신앙생활의 큰 장애가 되었다. 제사로 인해 부모님과 충돌을 피하려고 명절 당일 아침에 고향에 내려가지만, 아내는 며느리로서 먼저 내려가 있어 어려움을 겪곤 했다.

부모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실 때면 6형제 중 유독 우리집은 불편하셨는지 두세시간 머물다 가시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 부부는 이 문제를 통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고 좀 더 적극적인 신앙으로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온 가족이 인가귀도(引家歸道)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우리 부부는 교회를 나가지 않던 가족들을 위해 작정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이후 추도 예배시 온 가족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만은 달랐다. 아버지를 예수 믿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교회에서 열리는 가족 초청 행사와 같은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케 해 보았지만 좀처럼 아버지의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몇 해 전 봄에 아버지의 허리 통증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을 시켜 드려야 했다. 상황이 우리집 근처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입원해 계시는 동안 아버지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아버지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이 예수 믿는다고 다를 게 뭐냐? 교회가면 밥 먹여 주냐, 옷 입혀 주냐?" 였다. 그리고 안부 전화드릴 때면 매번 "니들이나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뭐 하러 전화하느냐"는 역정을 빈번히 들어야 했다. 아버지의 닫힌 마음은 우리 부부의 아픔이기도 했지만 신앙인으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게 해주는 거울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섬세하심이 지난해 가을에 있었다. 6형제 온 가족이 마음을 모아 아버지의 양쪽 눈 백내장 수술과 틀니를 해드렸다. 불편한 모든 것이 해결되니 아버지의 언어가 바뀌었다. 전화 드릴 때면 이제는 "애비야! 고맙다. 수고했다" 라는 말로 바뀌었다.

그런데 더 큰 변화가 우리 가정, 아니 아버지에게 생겼다. 지난 2월 설날 연휴 때 명절 추도예배를 드리는 도중, 아내가 아버지께 필사를 하시게 하면 어떠하시겠냐고 제안을 드렸다. 성경필사가 뭔지 모르고 계셨던 아버지께 필사는 성경을 노트에 똑같이 옮겨 적는 거라고 말씀 드렸더니, 아버지께서 흔쾌히 하시겠다고 하시는 거다. 할렐루야! 서울에 올라와 바로 필사 노트와 볼펜을 구해 보내드린 이후 95세의 아버지께서는 지난 2월 6일부터 지금껏 필사를 하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필사를 다 마치시면 더더욱 감사하겠지만, 필사를 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으면 하는 것이 우리 온 가족의 소원이다.

필사 후 아버지의 언어가 또 바뀌었다. "애비야! 고맙다. 이젠 다른 잡생각도 안 들고, 성경을 쓰니 너무 좋다. 바쁠 텐데 몸 조심하고 수고해라" 라고 하신다. 역정의 언어가 감사의 언어로 바뀌었고, 감사의 언어가 평안의 언어로 더 풍성해지신 것이다. 죽음을 가까이 두셨음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국에 대한 확신으로 평안할 수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지난 35년,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아버지를 신앙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과 경배로 영광 올려 드린다.

박광희 장로
목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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