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8월 28일~9월 2일

[가정예배] 8월 28일~9월 2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7년 08월 25일(금) 15:36

월-9월 24일
본문 : 학 2:18
찬송 : 285장

기념일을 챙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하다는 고백이며, 그때 그 마음을 잊지 않고자 하는 노력이다. 우리에게도 꼭 기억하고 그 때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새롭게 오늘로 가져오는 그런 세리모니가 필요한 날이 있다. 교회가 교회력을 만들고 매년 절기를 지키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절기를 지킨다는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그 날을 다시 오늘로 가져와서 새롭게 만나고,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일로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그 날이 어떤 날인지 살펴보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새롭게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학개서를 보면 9월 24일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9월 24일 이전의 삶은 엄청난 고통의 세월을 보냈고 9월 24일 이후의 삶은 회복의 시작이요 축복의 시작임을 알 수 있다. 9월 24일은 어떤 날인가?
첫째, 우선순위가 바뀐 날이다. 학개 1장 9절은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게 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보다 자신들이 거할 처소를 짓는 일에 몰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는 것에 대해 책망하고 있다. 그 결과 받은 것은 적고 그 적은 것을 집으로 가져갔지만 그것마저 하나님께서 불어버렸다. 그러나 9월 24일 하나님의 성전지대를 쌓던 그날부터는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그들이 그동안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고 했던 온갖 노력이 아무 쓸모없게 되었던 것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고자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쌓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그날부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우선순위를 늘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날이다. 학개 2장 10절 말씀에는 9월 24일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날이라고 말한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평강을 주시기로 한 날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언제 있었는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이다. 그들이 그동안 하나님보다 자신들을 우선했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날이며 하나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한 날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한 그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날을 기억하고, 그분의 은혜에 감격했던 그날로 계속해서 돌아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흔적이 있는 날이다. 스룹바벨을 하나님의 인장으로 삼으리라고 하신다. 우리는 몸에 흔적을 새긴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겼다. 우리는 마음가죽을 베고 통회하며 우리 마음 가운데 새긴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 이 흔적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판에 새긴 흔적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그날,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날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날로 돌아가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한 그날을 기억하며 그 날로 돌아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행수 목사
주평교회


화-의와 평강과 희락
본문 : 롬 14:17~18
찬송 : 405장

날마다 더해지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것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가치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먼저 할 때 더해지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세상은 우리를 속여 별 것 아닌 것에 우선순위를 두게 한다. 특히 물질적인 것을 최고의 가치로 보이게 한다. 실제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에서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세 가지가 나온다.
첫째는 의이다.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 11:7)"라고 말씀하신다.
둘째는 평강이다. 평강은 하나님과의 샬롬(평강)을 통하여 타인과 샬롬(평강)을 이루는 것이다. 평강이 무너지면 염려가 우리에게 찾아와 우리의 뼈를 상하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평강을 누리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을 통해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
마지막은 희락이다. 이는 나 자신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심령의 기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아갈 때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누구를 통해 이루어졌을까? 바로 우리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모든 막혔던 것을 여시사 평강을 이루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말미암아 영생의 기쁨과 은혜의 감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기쁨이 주어진 것이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강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함으로 더해지는 삶을 살아가시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은혜의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여시사 하나님 나라를 먼저 사모하게 하셔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나의 삶과 우리 가정 그리고 나와 함께한 모든 곳에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선 목사
마천세계로교회


수-천국을 알려주는 세 가지
본문 : 마 13:44~50
찬송 : 410장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천국의 비유는 첫째로 44절과 45절로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했다. 그 보화를 발견했기에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한다. 천국은 보화이다. 자기소유를 다 팔아서 사도 아깝지 않을 보배이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 버렸다는 것이다. 다 포기했다는 말이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천국으로 비유되는 밭에 감추인 보화가 무엇인가? 밭은 흙으로 빚어진 우리를 말하고, 보화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이다. 바울사도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말함으로 우리를 흙으로 만든 질그릇에 비유하며 그리스도를 보배로 비유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성령님이 모든 것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때에는 내게 있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하고 배설물로 여기는 바울의 고백이 바로 천국을 알고 나서의 고백임을 알 수 있다. 천국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아닌 내가 가지려고 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는 소유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 그 분과 임마누엘 된 자의 마음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천국은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했다. 많은 보석들 가운데 오직 진주만이 살아있는 유기체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진주는 산 생물체에 가해진 상처의 결과이다. 조개껍질을 파고 들어온 이물질은 진주층으로 뒤덮여 있다가 마침내 진주가 생성되는 것이다. 비유 속의 극히 값진 진주는 예수님께서 그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세 번째로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다고 했다. 그물은 고기를 잡는 도구이다. 잡아서는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버린다고 한다. 천국비유의 마지막을 그물로 말씀하고 있다. 주님과 임마누엘된 사람은 이 땅에서 천국으로 살아가다가 이 땅의 육신의 몸을 벗을 때 영원천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물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물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다 걸려든다. 임마누엘이 된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모두 이 땅을 떠날 때 그물의 심판대(예수 그리스도) 앞을 지난다. 그때 임마누엘로 살아온 좋은 것들은 영원천국에 들어감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천국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천국으로 살아가다가 이 육신을 벗을 때 영원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살다가 영원천국으로 입성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천국으로 살아가다가 이 육신 벗을 때 영원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순옥 목사
신산교회


목-세 종류의 손
본문 : 출 17:8~16
찬송 : 213장

인간의 손은 인간 활동의 중추적인 역할로 각양 각색의 기능을 발휘한다. 우리의 손이 어떻게 쓰여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교만하고 불순종의 손이 있는가 하면 민족의 영적 대각성 운동을 전개했던 사무엘의 기도의 손도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스라엘과 아멜렉의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세 종류의 손들을 살펴보며 우리가 어떤 손을 지녀야 할지 알아보자.
첫째는, 능력의 손이다. 모세의 손은 능력의 손이었다. 그의 손은 홍해 바다를 쳐서 육지 같이 건너가게 하고 반석을 쳐서 샘물이 솟게도 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본문의 아멜렉 전투에서도 그의 손이 내려지면 이스라엘이 패하고 손이 올려지면 승리하는 능력을 보였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세의 손은 본래 애굽인을 쳐죽인 혈기의 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렇게 악하고 연약한 손이 하나님에 의해 사용됨으로써 능력의 손으로 변화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붙드신다면 우리의 손은 분명히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돕는 손이다. 아론과 훌의 손은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올 때 내려오지 않도록 모세의 손을 받쳐 주었다. 옆에서 돕는 아론과 훌의 손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의 능력의 손도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한다. 초대교회 당시 이름도 빛도 없이 이웃과 사도, 교회를 도왔던 수많은 손들이 있었기에 복음이 계속해서 전해질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도 이웃과 교회를 돕고 위한다면 교회와 성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선한 일에 돕는 손을 사용한다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은 것처럼 칭송을 받는 성도가 될 것이다.
셋째는, 일꾼의 손이다. 여호수아의 손은 전투를 수행하는 손이다. 이 손은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는 충성되고 헌신적인 일꾼의 손이다.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한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는 손이 되어야 한다. 머리와 귀와 입만 크고 손과 발이 작은 기형적인 성도가 아니라 온 몸이 정상적인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일꾼의 손이 많을수록 교회와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자신있게 자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우리도 여호수아와 사도바울처럼 세월을 아끼고 맡은 바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일꾼의 손으로 살 때에 승리의 삶이 주어질 줄 믿는다.

오늘의 기도
두 손을 들어 하나님께 부르짖는 모세의 능력의 손, 모세의 두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떠받쳐 주었던 아론과 훌의 돕는 손, 일선에서 열심히 싸운 여호수아의 일꾼의 손이 합쳐 승리를 이끈 것처럼 우리도 세 종류의 손으로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탁영구 목사
용강교회


금-예수님이 진리요, 생명이시다
본문 : 요 14:6
찬송 : 493장

예수님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 온전한 길이 되려면 중간에 없어지거나 끊겨서는 안된다. 길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늘 변함없이 거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길이 있다가 없다가 하면 사람들이 헷갈리고 그 길을 믿을 수가 없게 된다. 사람이 만든 길, 세상의 길은 한계가 있다. 때론 막히고, 끊어지고, 없어진다. 그래서 그 길을 따랐던 사람들이 낭패를 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변의 길이시며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확실한 진리의 길이 되신다. 또한 우리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이신 동시에 생명이다. 여기에는 길 되신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이 담겨 있다. 예수님이 길이 되신다고 할 때, 이것은 우리에게는 복음이지만 예수님 자신에게는 매우 괴로운 일이다. 길은 밟히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꺼이 우리에게 밟히는 길이 되셨다. 예수님은 이 길을 열기 위해서 매를 맞았고 온갖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시고 결국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이 귀한 사랑이 우리를 살렸다. 예수님이 열어주신 길은 아스팔트길이 아니다. 대리석 길이 아니다. 바로 예수님의 보혈이 뚝뚝 묻어나는 참 생명의 길이다.
흔히들 영화제가 열리면 영화배우들이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고 멋지게 걸어 들어가는 길을 '레드카펫'이라고 부른다. 빨갛고 고급스런 카펫이 깔린 길 위를 걸어서 입장하면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모두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그 레드카펫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어서 천국으로 향하는 그 길에 붉은 색 예수님의 보혈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레드카펫 보다 더 붉고 더 진하고 더 가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붉은 보혈이 우리를 하나님의 품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 피 묻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매번의 예배마다 가슴 벅찬 감격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그저 그런 감정으로 만날 수 없는,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과 죄악과 모든 전존재를 덮으면서 다가오는 예수님의 그 진한 사랑이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본문에 나온 단어 길, 진리, 생명에는 모두 정관사가 붙어 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진리', '바로 그 생명'이시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길을 따라가는 모든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주시는 부활의 참 생명이 주어진다. 지금 이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천국까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참 생명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이 참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모두 천국에서 만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참된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의지하여 믿음의 걸음을 끝까지 걷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융희 목사
성민교회


토-우리는 그리스도인
본문 : 고후 6:3~10
찬송 : 463장

인생을 잘 살려면, 사람답게 살려면,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자기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위해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모르거나 안다 하여도 중대성을 부여하지 않거나 실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향방 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살아가므로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쓰지 못하고 허송세월로 흘려보내게 된다. 더구나 지금은 그리스도인들마저도 그 정체성이 모호한 삶의 행태를 보임으로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실제로 살았던 사도바울과 같은 삶을 살기를 힘쓰는 자들이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살 수 있었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살 수 있다.
첫째,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려고, 애쓰며 살아야 한다. 안디옥교회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존경과 칭찬의 의미였다.
둘째,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가 힘들수록 더욱 그리해야 한다.
셋째,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인 그리스도인이다. 사도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보기다. 우리도 그렇게 살면 최고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비방을 받지 않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삶이요,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살면 하나님께 상급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오늘의 기도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예수그리스도를 닮아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보인대로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찬종 목사
대구엘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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