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7월 31일~8월 5일

[가정예배]7월 31일~8월 5일

[ 가정예배 ]

이경남 기자 knlee@pckworld.com
2017년 07월 28일(금) 17:19

월-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 : 마 7:7~12
찬송 : 369장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이다. 사랑 받으며, 사랑 받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이다. 사랑할 때 장수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무서운 공포의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이나 기쁨을 빼앗아 가시는 파괴적인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다.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무엇도 아끼지 않고 값없이 주시는 분이다. 더 주고 싶어서 견디지 못하시는 분이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다. 좋은 것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잘 섬기는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란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한 것은 단번에 응답되지 않는 것에 대해 인내로써 기도하라는 뜻이다. 단순히 반복된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계속적으로 하되 점점 강하게 하라는 뜻이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요구하고 계신다. 인내와 끈기로서 하나님께 요구해야 하며 하나님은 이러한 요구를 통해 우리가 훈련되기를 원하신다. 기도의 능력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자. 기도하는 교회, 가정, 기도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받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각각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아무에게나 아닌 하나님을 잘 믿는 자에게 주신다. 믿음은 선물이며 선물을 받는 통로이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가장 큰 선물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영육 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그러나 좋은 것을 얻기 위한 도구나 방법으로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멀리 하거나 버려서도 안된다. 하나님을 더욱 잘 믿음으로 좋은 것을 받아 누리시기 바란다.

마태복음 7장 12절은 소위 황금률로 익히 알려져 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면이 그리스도 교훈의 독창성이고 특징이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란 말은 정확히 주고 정확히 받자는 뜻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들에게 자기가 타인에게 기대한 만큼 타인도 자기에게 기대하고 있음을 각성시키는 말씀이다.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서로의 권리 주장을 앞세우지 말고 겸손하게 먼저 사랑을 행하라는 뜻이다. 기도하고 믿는 자는 섬김과 봉사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섬김의 지도력을 가져야 한다. 섬김과 사랑의 실천이 예수님의 모습이고 율법의 완성인 것이다. 성도는 변화된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은 더욱 좋은 것을 허락하신다. 내가 먼저 앞장서서 기도하고 믿고 대접하자.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더 좋은 것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드린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어 하늘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는 복 있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유병수 목사
성서제일교회


화-정글의 법칙
본문 : 요 5:1~15
찬송 : 337장

정글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해야 하고 방심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약육강식, 승자독식, 적자생존, 먹이사슬의 법칙이 있다. 그런데 이 정글과 정글의 법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존재하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도 정글과 같은 곳이다.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말은 이곳에 정글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천사가 가끔 물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물이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는 잘못된 신화와 비진리가 판을 치고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서른여덟 해 된 병자는 거짓 신화와 비진리에 묶여 오랫동안 연못을 떠나지 못했고, 살아남기를 바라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바라보는 것은 '물이 움직일지의 여부'였다. 그런데 38년 된 환자 말고도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혈기마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앞도 잘 보지 못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자신들을 도와주는 누군가의 능력이나 힘으로 자신들의 삶이 좌우됨을 의미한다. 이들이 물에 먼저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의 문제였고, 사람에 대한 기대와 원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서른여덟 해된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다. 그리고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때 그 사람은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며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근본적인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찾아오셨지만 그는 세상의 법칙대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자신을 도와 달라고 주님께 부탁하고 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지만 세상의 법칙과 논리에 기대어 주님께 성공과 높은 지위와 많은 물질과 건강을 주시기를 원하며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고 간절히 구한다. 주님께서는 그의 대답을 무시하시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다. 이것은 그에게 새로운 주님의 법칙을 소개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법칙'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일어나면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어 '생명의 법칙'의 지배를 받기 원하신다.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만이 인생의 문제 해결자가 되신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다시 그를 성전에서 만나서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부탁하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소개하신 '거룩의 법칙'이다. '믿음의 법칙'과 '생명의 법칙'에 지배받는 사람들은 거룩한 삶, 즉 '거룩의 법칙'의 지배를 받아 주어진 정글을 제대로 살아가고 승리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짧은 지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를 범치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광재 목사
대조제일교회


수-나는 누구인가?
본문 : 출 3:11~16
찬송 : 366장

출애굽기 하면 '노예해방'과 지도자 '모세'가 떠오를 것이다. 출애굽기는 단순한 노예 민족의 정치적 해방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가능하게 한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다. 구속사적인 사건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다.

이 사건은 모든 시대 성도들의 영원한 구원을 가능하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예표이며, 영원한 천국 구원의 상징이다.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을 만날 때의 나이가 80이라고 했다. 80이라는 숫자는 세월의 숫자이기도 하지만 8의 숫자가 가지고 있는 언어적 의미는 곤고의 수, 마귀에게 미혹된 고통의 수, 괴로움의 수이다. 부모의 품에서 3개월을 산 후 40년간 궁정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살고, 그 후 40년을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았던 40년의 4라는 숫자는 세상 수이며 고통과 관련된 수로써 도합 80년은 모세가 세상 속에서 산 삶이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었음을 알려준다. 고통이 극에 달하여 신음하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셨다. 찾아오신 하나님에게 모세가 첫 번째 질문을 한다. "나는 누구인가요?" 모세가 하나님의 앞에서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질문, 고통 가운데서 모든 자신감을 상실한 평범한 노인이 된 모세의 이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친구를 대하듯이 답변해 주신다. 첫째는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둘째는 하나님을 섬기(예배)라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섬김)를 통하여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이 자기의 정체성을 회복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과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밖에 없다.

"당신이 누구십니까?" 모세가 두 번째로 질문했다. 하나님은 또 다시 모세의 질문에 답변해 주신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세상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피조된 존재들과 달리 모든 인과법칙을 초월하여 자존하시며 모든 존재의 근거가 된다는 뜻이다. 또한 조상들의 이름을 말하므로 조상들과 맺으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분임을 알게 하신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고 계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다. 나의 정체성을 알고 내가 믿고 바라보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깨달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가서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가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의 일꾼은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아가 완전히 죽을 때가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가 되기에 적합한 때이다. 그리고 지금도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나를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 섬김과 예배드림의 중요성을 알고 열심을 내자.

오늘의 기도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찾아 오셔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 나를 찾아와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를 통해 구원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해숙 목사
베데스다교회


목-기업 무를 자
본문 : 룻 4:1~6
찬송 : 596장

룻과 만나 기업 무르는 일에 관하여 대화를 나눈 다음날 아침, 보아스는 성문에 올라가 앉아 있다가 자기보다 더 가까운 근족을 발견하고 그를 불렀다. 다음에는 신속히 성읍 장로 10인을 청빙하여 증인으로 삼은 후 그에게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의사가 있는가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 제의를 수락하였으나 룻과의 결혼이 그에 수반되는 의무임을 알고는 포기했다.

오늘날처럼 불신으로 가득 찬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믿고 요직을 맡겼는데, 사회에 엄청난 지탄을 받고 그 자리를 물러나기도하며, 존경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추락하기도 한다. 무엇인가 맡기고 사는 시대가 되지 못하는 것이 이 시대의 아픔이다. 그러나 보아스의 행동을 보면 그는 무엇이나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도 보아스와 같이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켜 드리며, 영광을 드러내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아스처럼 믿음직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첫째, 공평하고 진실한 사람이었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 21:3). 본문에서 보아스의 공평무사한 행위를 볼 수 있다. 보아스는 룻의 아름다움에 흔들리거나 욕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양심은 교활한 간계를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도 악한 것은 악하다, 의로운 것은 의롭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사로운 감정에 지배되거나, 인정과 애정에 끌려선 안된다. 빌라도 총독은 죄 없는 예수님을 의롭다고 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두려워서 넘겨주었기에 큰 오명을 남기게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정한 일을 할지라도 성도들만큼은 진실하고 바른 생활을 하시기 바란다.

둘째, 문제를 간결하고 깨끗하게 해결해 나가는 사람이었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에게 이익만 된다면 정의와 양심을 다 팽개쳐버리고 아무 일이나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나 보아스는 순수하고 정결한 마음이 샘솟는 자였기에 이 일을 생각하는 것조차 큰 고통과 갈등을 느꼈다.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보아스가 한 행동은 복받을 만한 행동이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였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거룩한 복의 빛으로 가득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예수님은 재물이 많거나 학식이 높거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보다 믿음이 큰 사람을 볼 때 기뻐하신다. 믿음이 크다는 것은 실천하는 믿음, 순종하는 믿음을 말한다. 보아스도 여러 유혹과 탐욕을 접어놓고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과 복을 받는 산 신앙인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과 책임을 다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게 하기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경호 목사
대전동안교회


금-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본문 : 삿 6:11~18
찬송 : 95장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그렇다면 내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내가 만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래야 올바른 예배와 경배를 드릴 수가 있다. 그저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올바르게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럴 때에 온전한 신앙인으로 만들어진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힘있게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기드온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살펴보자.

첫째, 우리의 가능성을 믿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가능성을 싹부터 짓눌러 버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고 넘어지고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예"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두 가지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 첫째는, 자신의 집안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가장 약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자신은 가족 중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을 만나자마자 그를 가리켜서 큰 용사라고 하셨다.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비천하고 약한 자로 여기며 살아왔던 그에게 "큰 용사여"라는 말은 얼마나 황당한 소리로 들렸겠는가? 하나님은 기드온의 과거나 현재를 보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셨다. 하나님은 이 가능성을 가지고 하잘 것 없는 기드온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를 선택하셨다.

둘째로, 우리의 불평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보자마자 애굽에서 나올 때 베풀어주셨던 그 기적을 지금은 왜 베풀지 않는지를 불평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마땅히 그 기적을 일으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런데 기드온의 불평을 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눈여겨볼 것은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라고 쓰여 있다. 지극한 연민의 심정으로 그를 주시하는 모습이다. 마치 인정 많고 통찰력 있는 상담자와 같다. 내담자를 이해하고 그의 고통을 공감하는 상담자가 그를 도울 목적으로 안타깝게 여기며 바라보는 연민의 모습이다. 그 앞에서는 어떤 불평도 다 받아주고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눈이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어떤 불평이라도 능히 받아주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이 말씀을 믿는다면 비록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두울 때라도 평강의 하나님을 의지하라. 우리를 믿고 잠재된 가능성을 개발시켜 주시는 그분께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을 드러내라. 확신이 서기까지는 그분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고 믿음의 자리에 서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라.

오늘의 기도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힘차게 살아가며 승리하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주철 목사
언양영신교회


토-나의 병든 몸을 고쳐주소서
본문 : 막 6:53~56
찬송 : 471장

아픈 사람이 가장 기뻐할 소식이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병을 고칠 수 있다',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현대인들은 알 수 없는 병에 노출되어 있고 그 병을 치유받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약속하기를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오기만 하면 다 치유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참으로 복된 소식이다. 또한 본문 56절 마지막 구절에 보면 '다 성함을 얻으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성함을 얻는다'는 말은 단지 육체적인 고침만이 아니라 정신적 영적으로도 잘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 말씀처럼 예수님 앞에서 다 성함받는 역사가 있기를 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씀을 살펴보면 손을 대는 자가 성함을 얻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와 손을 대야 한다. 예수님께 나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대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믿음과 동시에 행함도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믿음은 있는데 행함이 따라주지 않아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주일마다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의 은혜를 입어 지식은 많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것을 실천하지 못해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참된 빛이시고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들의 허물 속에 가리워져 복음을 차단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머리만 뜨거워졌지 가슴이 뜨거워지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과 함께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찬송가 471장은 이러한 믿음과 함께 행동하는 신앙인의 모습이 잘 나타난 찬송가이다. 이 찬송은 '나의 병든 몸'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 잘 표현하면서 자신의 병을 '지금' 치유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런데 치유받기를 원하는 근거는 모든 병을 고쳐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그래서 지금 굳게 믿고 주님 앞에 간구한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기원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간구'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원하고 있다. 이런 기원의 찬송이 마침내는 '주를 위해 살겠으니' 건강을 주시라고 간청도 하고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내게 속한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이니'라는 고백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주님의 것으로 완쾌를 '믿사옵니다'라고 다짐하며 그 치유의 은사를 영원토록 감사하고 어디든지 전하겠다고 약속까지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임하시지 않으면 능력도 없고 질병가운데서 고통당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서 손을 대면 우리의 질병을 가정을 교회를 고치시고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께 나아가면 고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주 앞에 나아갑니다. 지금 고치시고 온전하게 하셔서 주님 약속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성호 목사
광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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