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십자가 그늘 아래 함께 쉬길

평화의 십자가 그늘 아래 함께 쉬길

[ 기고 ]

안홍철 목사
2017년 06월 07일(수) 09:50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는 통일선교의 토대 위에서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준비하는 위원회로, 통일선교의 일꾼들을 양성하기 위해 통일선교대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로 7기를 맞고 있다.

필자가 몸담은 한아봉사회는 동남아시아의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라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선교역량을 키우며, 최종적으로는 남북의 화해통일을 준비하기를 꿈꾸는 봉사선교단체이다. 그런 연유로 실무책임자로서 북한 봉사선교를 준비하고자 통일선교대학원에서 진행하는 북중접경지역 탐방에 참가했다.

중국 대련에서 17시간의 심야기차를 타고 연길에 도착, 도문, 개산툰, 용정, 이도백하, 백두산, 장백현, 통화, 집안, 단동으로 해서 다시 대련에 이르는 5박 6일 총 3600㎞의 대장정이었다. 두만강 1000리 압록강 2000리 강을 따라 북한의 원경을 보면서 가깝지만 마음으로는 아스라해져 버린 북한을 직면했다.

작년 홍수로 논밭과 초소가 쓸려버려 아직까지 방치된 두만강 남양 마을, 식량난 해결을 위해 나무들을 자르고 산비탈에 만든 다락밭, 영양부족으로 우리보다 한 뼘 정도 키가 작고 왜소한 군인들, 중국 단동과는 너무 비교되는 불 꺼진 국경도시 신의주의 밤 풍경…. 버스 차창 밖으로 내내 북의 산하를 눈으로 보면서 정치와 경제의 실패로 피폐해진 북한의 민낯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거웠으며, 비 내리는 버스 안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드린 통일기도회에서는 안타까움과 아픔으로 드리는 비원의 기도가 이어졌다.

산 아래로 보이는 넓은 들 용정을 바라보며 사람 살지 않던 땅에 피난 와서 맨주먹으로 우물을 파고 논밭을 만들어 농사 짓던 독립군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중국의 석회석 물이 고니라 고향에서 마시던 물맛을 처음 퍼올렸을 선조들의 웃음도 그려본다.

지금은 동북 3성이 된 간도에서 독립을 위해 싸웠던 김좌진, 홍범도, 이회영 선생, 그리고 그보다 많은 이름 없이 사라져간 독립군들의 자취도 만났다. 일송정 푸른 솔과 한 줄기 해란강을 바라보면서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의 고고한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도, 독립군의 땅 간도도 내 나라 내 땅을 통하지 못하고 산 설고 말 설은 중국 땅을 거쳐야 다다를 수 있음에 답답한 마음을 쓸어내려야 했다.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중국 역사에 편입되어가는 넓은 땅의 왕, 광개토대왕의 비석이 호태왕비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뒤늦게야 알고서는 우리가 맞닥뜨린 역사적 현실에 무심했음을 자책하면서 울분과 서글픔의 감정이 올라왔다.

3600㎞의 거리를 기차와 버스로 이동하면서 수시로 이어지는 강의와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은 참 진지하고도 변혁적이었다. 6.25 전쟁 중 양민 학살의 트라우마를 겪어서 공산주의라면 치를 떠는 장로님의 떨리는 목소리와 실정법을 어겨가면서도 지탱해 왔던 통일운동 덕분에 이렇게라도 통일 논의가 진전되어 왔다는 목사님의 간곡한 억양이 서로 부딪치기도 하면서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했다.

각자가 겪은 다른 경험을 공유하여 언뜻 만나기 어려운 입장의 차이가, 북한의 아픔을 직접 목격하고 엿새 동안 몸을 부대끼면서 서로 한 발자국 나와서 만났다.
우리 사회로 들어온 탈북자가 3만명을 넘어섰다. 작년에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주변국들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나라를 물어보았는데 남한보다는 중국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제 탈북자 문제는 통일로 가는 우리 사회에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고 통일을 이루는 시험대가 됐다. 지역에 착근되어 전국적으로 고르게 퍼져있는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탈북자들을 섬겨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선행을 알아서, 그 소문이 전파를 타고 북쪽으로 간다면 고통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얼마나 복된 소식이 될까?

그런 점에서 독일 통일의 교훈은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가 크다. 동독과 서독의 정권이 갈등할 때조차도 독일의 교회들은 서로 연락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서독의 교회들은 동독의 교회를 지원했다. 독일 통일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동서독의 교회들이 정치와 외교적 부침에 관계없이 대화와 인도적 지원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신뢰를 쌓아감으로서 하나님의 때에 전격적으로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북한은 전쟁 이후 60여년을 긴장의 연속인 전쟁국가 체제로 살아왔다. 남은 것이라고는 비대칭 전략인 핵무기와 꺾일 수 없는 자존심만 남은 황폐해져 버린 땅이다. 남과 북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이제는 품이 큰 곳에서 지치고 어려운 곳을 품어야 할 때이다. 특히 품이 큰 곳의 마음이 깊은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의 주민을 잃어버린 양처럼 찾고 찾으며 보듬어야 할 때이다. 막힌 담을 허시고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으시고 화해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맡기신 분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할 때이다.

북중접경지역에서 통일 기도회를 하며 강 건너 있는 북한 초소를 봤다. 허물어져 가는 초소 앞에는 십자가 모양의 전신주가 서 있었다. 순간 그 장면이 작은 기도골방 앞에 세워진 십자가로 보였다. 초소 앞의 십자형 전신주가 북한의 마을 앞에 세워진 십자가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래서 60여 년 동안 서로 떨어져 살면서 지치고 고단한 남북한의 주민들이 화해와 평화의 십자가 그늘 아래에서 서로 만나서 인사하고 정을 나누고 쉬기를 기도한다.

 

안홍철 목사   한아봉사회 사무총장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