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가위 바위 보

내 마음의 가위 바위 보

[ 논설위원 칼럼 ]

안홍철 목사
2016년 01월 20일(수) 10:26

같은 무게의 일을 가지고 논쟁할 때에 곧잘 가위바위보를 한다. 가위바위보는 누구나 같은 확률로 지거나 이기거나 하기 때문에 참 공평한 승부 가르기라고 할 수 있다.

가위는 보를 이기고 바위는 가위를 이기고 보는 바위를 이긴다. 가위로 보를 자르고 바위는 가위를 망가뜨리고 보는 바위를 덮는다. 한 사람이 셋 중에 무엇을 내든지 이길 확률은 같기 때문에 상대방이 무엇을 내느냐에 따라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물리적인 가위바위보는 그렇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가위바위보에서 우리는 무엇을 낼 것인가?

예수님도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셨다. 예수님은 무엇을 내셨을까? 무대는 갈릴리 가버나움 회당인데(막 3:1~6),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신다. 거기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유심히 보신다.

회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예수님을 바라본다. 일전에도 안식일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회당에서 고친 적이 있었다(막 1:21~28). 바리새인의 율법에 안식일에는 생명이 위급한 사람만 고칠 수 있으며 귀신 들린 사람이나 손 마른 사람은 안식일에 고칠 수 없는 병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회당에서 안식일 규례를 어긴 것이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안식일을 어기는지, 만약 어긴다면 예수를 고발할 목적으로 예수를 주시하였다. 예수를 고발하는 마음 속의 손가락질…사람들은 가위를 내었다.

거기에는 바리새인들도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어떻게 하면 올무에 걸 수 있을까 고민한 사람들이다. 예수가 이번에도 병자를 고칠까? 그러면 이번에는 단단히 올무에 걸어야지 생각했다. 예수는 자기가 무엇이나 된 듯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하면서 과연 이번에도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쳤다. "됐다. 예수를 죽일 구실을 찾았다" 바리새인들은 이제 어떻게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였다. 한 사람을 망가뜨리고 죽일 구실을 찾은 사람들, 폭력의 주먹들… 바리새인들은 바위를 내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내셨는가? 회당 안에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손 마른 사람을 바라보는 예수를 주시하였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손 마른 사람을 한 가운데에 일으켜 세우시고는 "네 손을 내밀라"고 하시고 그 손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손을 펴서 말라버린 손을 잡으시고 쓰다듬고 덮어주셨다. 마른 손을 쓰다듬으시는 손, 오랜 동안의 고통과 설움을 품어주시는 손, 병자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손… 예수님은 보를 내셨다.

사람들은 비판하고 고발하고 손가락질 하며 예수를 주시한다. 바리새인들은 올무에 걸고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망가뜨리고 죽일까 하며 예수를 주시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손가락질하고 주먹질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고 손 마른 사람, 아픈 사람, 약한 사람을 바라보신다. 그리고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는 중심에 놓고 그에게 손을 펴서 잡고 쓰다듬고 품어주고 안아주신다. 예수님은 손과 팔을 펴시는 주님, 고치시는 주님, 치유의 주님이다.

내 마음 속에서도 하루에 수십 번 씩 가위바위보를 한다. 어떤 사람이 한 일을 보면서 삿대질하고 손가락질하고 비판하면서 가위를 낼 때도 있다. "저렇게 하면 안 돼, 저 사람 도대체 뭐하는 거야, 안 되겠군. 혼나 봐야 정신을 차리지"하며 바위를 낼 때도 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나름대로 힘들었을 거야,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하며 용납하고 이해하고 품으면서 보를 낼 때도 있다. 가위를 내면서 비판하고 바위를 내면서 망가뜨리고 싶은 마음이 자주 생기지만 보를 내어 보자기로 감사주고 싸매주고 덮어 주어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우리는 100회 총회를 감사하면서 주제를 "주님, 우리로 화해하게 하소서"라고 정하였다. 비판하는 가위나 망가뜨리는 바위를 내지 않고 교회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손을 펴서 쓰다듬고 품어주는 보를 내기로 한 것이다. 현실 게임에서는 가위바위보가 다 같은 값이지만 우리 마음의 가위바위보에서는 모름지기 보를 내고 보자기로 덮어주고 품어줄 일이다. 가위로 잘리고 바위로 망가질 것을 훤히 알면서도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보를 내고 보자기로 덮어주시는 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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