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이룬 종교개혁의 꿈, '지금', '여기서'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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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 ] 체코교회, 얀 후스 서거 600주년 기념행사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5년 07월 13일(월) 18:24
   
 

지난 6일은 얀 후스(Jan Hus)의 서거 6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얀 후스 서거 600주년을 맞아 체코 교회는 지난 5~6일 전 국가적인 축하행사를 개최, 전세계인들에게 종교개혁의 신앙유산을 나누고 그의 숭고한 신앙과 정신을 전했다.
 
체코 정부, 프라하시(市), 카렐대학의 후원과 체코형제복음교회, 체코슬로바키아 후스교회의 주관으로 준비된 체코 종교개혁자 얀 후스 순교 600주년 행사는 프라하 구시가 광장을 중심으로 600년 전 얀 후스가 실제로 거닐었던 거리와 강의했던 학교, 설교했던 교회당과 종교개혁을 토론하고 논의했던 장소들에서 진행됐다.
 
얀 후스는 면죄부 판매, 성직매매 등의 교회 타락을 비판하면서 교황제도를 반대, 말씀에 권위를 부여한 새로운 교회론인 예정론과 이종성찬을 강조했으나 콘스탄츠공의회에서 교회 권력자들의 결정으로 1415년 7월 6일 화형을 당했다.
 
학술행사 및 다양한 문화 행사, 어린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 등이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는 오늘날 체코 역사와 세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살아있는 얀 후스의 정신과 사상을 다시 기억하며, 그의 죽음을 잔치로 승화시켜 새로운 기독교 부흥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진행됐다. 이 행사에는 체코형제복음교회와 체코슬로바키아 후스교회의 초청으로 전 세계에서 많은 기독교 인사들이 참석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에서도 6명의 신학대 교수들을 포함 41명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교단을 대표한 방문단은 후스 축하행사가 열리기 전 6월 2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입국해 루터 종교개혁지 방문, 그리고 체코에서 체코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체코 종교개혁자들이 비밀리에 성서를 번역하고 출판한 장소, 후스의 생애와 종교개혁과 관련된 장소, 체코 종교개혁 박해지 등을 방문하며, 세계 종교개혁과 오늘날 한국교회의 미래를 진지하게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대표단은 비텐베르크에서 2017년 루터 종교개혁 5백주년 기념식수 5백 그루 나무심기에 우리교단의 이름으로 식수했다.

   
 


 
또한, 지난 5일 총회와 동역 교단인 체코형제개혁교단 에큐메니칼 손님들 가운데 20여 명과 함께 코빌리시교회에서 에큐메니칼 예배를 드렸다. 이 예배에서 폴란드 개혁교회 비숍 마렉 이즈데브스키 목사가 시편 27편을 본문으로 설교를 했으며, 코빌리시교회의 담당교역자들인 에르딘게르 목사와 류광현 목사가 함께 성만찬을 집례했다. 마렉 이즈데브시키 비숍은 설교에서 "후스 순교는 사회나 교회에서 자기 지위에 대한 자만하는 사람들, 자신의 신앙을 세상에 증언하는 일보다 사적인 일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위해 살지 못하는 크리스찬들을 위한 위대한 훈계"라고 강조하고, "후스는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정에 참여한 사람이기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언한 사람"이라며 오늘날 교회와 크리스찬들이 기억해야할 후스 종교개혁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예배가 끝난 후 방문자들은 이번 후스 축제 준비위원장이자 체코형제복음교단 에큐메니칼 총무인 게르하르트 라인게하우스의 사회로 '후스 포디움'에 참석했다. 이 시간에 임희국, 홍지훈, 최상도 등 세 명 교수들이 영국 헝가리 등의 에큐메니칼 게스트들과 함께 발표했다. 모든 순서가 끝난 후 코빌리시 교우들이 준비한 한국식 불고기 숯불 바베큐와 체코식 디저트로 한국 방문단과 함께 에큐메니칼 게스트 그리고 예배에 참석한 내외 손님들 약 150여 명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와 프라하 코빌리시교회가 재정을 지원한 개막제에서 올로모츠 모라비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체코형제복음교단 음악담당 모라베츠 장로가 작곡한 '종교개혁 소나타'를 연주함으로써 '2015년 얀 후스 축하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 곡은 특별히 이종실 선교사가 선곡한 한국교회 종교개혁 찬송가 2곡 가운데서 모티브를 사용했다. 대표단은 7월 5일 프라하 카렐대학 총장이 초청하는 리셉션과 7월 6일 개혁신학부 교회사 교수인 페트르 모레 박사의 '체코종교개혁과 얀 후스' 강연 그리고 에큐메니칼 예배와 스메타나홀에서 열린 폐막제에 참석했다. 프라하 광장에서 열린 에큐메니칼 예배에서는 대표단의 일원인 김민식 목사(광주 동광교회)가 기도순서를 맡았으며, 프라하 카렐대학 총장 초청 리셉션에서는 호남신대 신재식 교수가 인사말을 했다.
 
이번 축하행사에 깊이 관여하고, 또한 한국 방문단을 인솔한 이종실 선교사는 "종교개혁자 얀 후스는 루터와 칼빈보다 100년 앞서 그들의 개혁프로그램을 선도했지만 약소민족의 실패한 종교개혁이어서 오늘날까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번 얀 후스 순교 600주년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한 것에 대해 체코형제복음교회는 관심과 지원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 얀 후스는?

얀 후스(Jan Hus)는 1371년 체코 남부 보헤미아의 후시네츠 마을에서 태어나 카렐대학에서 인문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이 대학에서 교수와 총장을 역임했다. 유명한 대중 설교가로 인기가 높았던 후스는 1412년부터 교황의 면죄부 판매, 성직 매매, 교회의 부패 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고난을 겪기 시작했다. 처형 당하기 전 그는 2년간 유배를 당하기도 했는데 그 기간 중 저술한 '교회에 대하여(De ecclesia)'는 종교개혁 역사에서 중요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자신들을 하나님의 교회로 동일시 하던 교회 권력에 대해 "최후의 심판 앞에 교회도 서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해 교회 권력자들의 표적이 됐다. 특히 후스는 당시 가톨릭교회가 성만찬시 사제들에게만 잔을 허락하고 평신도들에게 빵만 받도록 한 당시의 구습을 깨고 이종성찬을 실행함으로 당시 교회의 사제 특권적 위계에 도전하기도 했다. 후스의 이러한 개혁적 행보로 보헤미아 지역의 교회가 소유했던 토지가 사회로 환원되기도 했다.
 
이러한 개혁 행보에 콘스탄츠공의회는 그를 이단으로 선고하고, 1415년 7월6일 화형에 처했다. 이에 분노한 체코의 백성들은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하는 결의문을 발표했고, 교황은 십자군을 모집해 5차례나 보헤미아를 공격했다. 물리력 행사에 실패한 로마교회는 1433년 바젤공의회에서 후스파와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 과정에서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었다. 급진파는 '체코형제단'을 구성했고, 이는 오늘날의 '체코형제복음교회'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와 체코의 후스는 루터 이전 종교개혁의 전야를 밝힌 사람들로 묘사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후스의 종교개혁은 위클리프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 체코 교회의 자체적 토양에서 나온 개혁이며, 개혁의 전야를 밝힌 수준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개혁을 이끌어낸 자체적인 하나의 온전한 종교개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교황들도 얀 후스를 개혁가로 인정

당시 부패했던 교회 권력을 비판하다 순교한 얀 후스에 대해 현세대에 이르러 가톨릭 교황들도 몇차례 유감의 뜻을 표한 바 있다.
 
지난 1998년 12월 18일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라하를 방문해 15세기 콘스타츠공의회에서 얀 후스와 그의 변호인 제롬을 정죄하고 처형했던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에서 얀 후스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은 입장을 밝히며 "계속적인 갱신을 향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해 화합과 평화의 길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세계교회협의회(WCC)도 얀 후스 서거 600주년을 맞아 메시지를 발표했다.
 
WCC는 "얀 후스의 삶과 신앙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그는 15세기 초 중요한 질문을 제기했으며, 그의 반대자들의 숨막히는 위협 속에서도 용감하게 진리를 찾고, 이를 실천한 인물"이라고 치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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