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페어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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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창 ]

안홍철 편집국장 hcahn@pckworld.com
2015년 03월 11일(수) 09:53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 매년 7월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 대회입니다. 1903년에 창설된 대회로, 매년 7월 약 3주 동안 프랑스 전역과 인접 국가를 일주합니다. 대략 4000km가 넘는 장기 레이스인데다가 난코스가 많아 '죽음의 레이스'로도 불립니다. 경기방식은 같은 그룹 선수들의 구간별 소요시간은 모두 같은 기록으로 측정됩니다. 선수 간 차이가 자전거 1대 길이 이하이면 같은 그룹에 속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죠. 구간별 측정 기록으로 선두와 포인트 우승자를 가려 구간별 총합 기록시간이 가장 짧은 선수가 최종우승자가 됩니다. 수많은 영웅들이 있지만 그 중에도 인상적인 선수는 대회 7연패를 한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입니다. 그의 7연패는 암을 이겨내고 이룩한, 인간 승리로 손꼽힙니다. 그런데 이 선수와 함께 늘 기억되는 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독일의 싸이클 영웅인 얀 울리히입니다. 그는 97년 투르 드 프랑스 우승,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독일의 사이클 영웅입니다. 그러나 투르 드 프랑스에 암스트롱이 출전한 99년 이후부터는 그의 그늘에 가려 준우승만 3차례 기록해 '만년 2인자' 소리를 들어야 했던 비운의 선수입니다.
 
2003년 뚜르 드 프랑스 경기가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 때의 일입니다. 독일 국민들은 울리히가 암스트롱을 꺾고 1인자로 등극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승점을 9.5km 앞둔 긴 오르막에서 암스트롱은 여전히 1위로 언덕을 오르고 있었고 울리히는 3위로 바로 뒤에서 바짝 추격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순간 선두의 암스트롱이 도로변 어린아이의 가방끈에 핸들이 걸리면서 넘어지게 됩니다. 바로 뒤따라오던 선수도 넘어졌고, 울리히는 간발의 차로 위기상황을 모면합니다.
 
경기를 보던 독일 국민들은 순간 환호했습니다. 드디어 울리히가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으니까요. 그러나 울리히는, 스피드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급격히 줄입니다.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달릴 때까지 울리히는 기다립니다. 그리고 암스트롱이 완전히 선두 그룹에 합류한 후에야 나란히 속도를 높입니다.
 
암스트롱은 다시 질주하여 결국 1위로 결승점에 도착했고, 아쉽게도 울리히는 61초 차이로 또다시 2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기자들이 "왜 그때 승부를 걸지 않고 암스트롱을 기다렸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타인의 실수로 우승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페어플레이는 자전거 경기에 있어서 자전거와 함께 필수 요소입니다." 그의 말은 전 세계 관중들에게 큰 감동이 되었고 이를 두고 '위대한 멈춤'이라고 부르며 울리히의 스포츠 정신을 높게 샀습니다. 울리히의 이 위대한 멈춤은 교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각종 선거에서 학연, 지연을 넘어 금품 수수 등 세상보다 더한 방법으로 일단 되고보자는 식의 자리 다툼,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이들, 본인이 과거 한 말을 번복하며 정관이나 규칙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이들, 도덕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일이 발각되면 "물러나겠다"고 했다가 판세(?)를 보며 이를 번복하고 분란을 일으키고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후안무치한 행동을 보이는 이들….
 
무한 경쟁 시대에 울리히같은 사람은 바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경쟁뿐인 세계는 먹이사슬로 움직이는 아프리카 정글과 같은 야만 세계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신 어린 양, 예수님도 "피할 수만 있다면"이라 생각하셨지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바란 것처럼 다소 바보 같지만 향방없는 무한 경쟁이 아니라 가야할 때와 멈출 때를 아는 페어플레이는 아름다움과 향기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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