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네 갈래 길

데스크창-네 갈래 길

[ 데스크창 ]

안홍철 편집국장 hcahn@pckworld.com
2015년 01월 06일(화) 09:00
새해를 맞아 서가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사 모으기 시작한 문고판부터 대학시절 전공서적, 다양한 역본의 성경책을 비롯하여 주석 및 사전류의 전집과 10여 년 신학공부하며 구입한 칼 바르트, 폴 틸리히, 라인홀드 니버, 버나드 앤더슨 등 원서들이 한 쪽 벽면을 모두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며 읽었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비롯해 마샬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 피터 슈워츠의 '미래를 읽는 기술' 노암 촘스키의 '여론 조작'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에바 일루즈의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생애' 등 미디어 관련 서적들도 듬성듬성 꼽혀 있습니다. 카메라와 자전거 등 각종 취미생활을 시작할 때마다 구입한 입문서, 직무 상 해외출장을 가기 전에 사두었던 나라별 여행서 등도 꽤 분량이 됩니다. 그러나 전공서가 아닌 입문서들은 관심이 있어서 샀지만 목차만 읽고 몇 부분 읽다가 덮어버린 책이 부지기수입니다. .

그런가 하면 곽재구 시인의 '포구 기행' 언론인 출신 작가 김훈의 '문학기행'이나 김승옥 선생의 '무진기행'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등은 감성이 퍽퍽해질 때 자주 꺼내 보기에 눈에 잘 띄는 '로얄 라인'에 꼽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노벨 문학상ㆍ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들, 본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박이도 시인 전집, 이성복, 황지우, 전혜린 그리고 대학시절 같은 문학 수업을 들었지만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시집들이 또다른 벽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

천장과 맞닿은 맨 위쪽칸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책들이 있었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안나 카레리나, 테스, 스탕달의 적과 흑, 톨스토이의 부활, 오 헨리, 헤밍웨이, 에드가 알란 포 같은 세계문학전집과 대문호들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책꽂이 옆에는 어쩌다 빼보고는 제자리에 꽂아두지 않은 로트랙과 고흐의 화집, 헤르만 헤세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루이제 린저, 에리히 프롬, 파울로 코엘료, 무라카미 하루키가 누워있었습니다. 책꽂이를 보고 있자니 대학졸업 후 30년이란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

책정리하다 멈추고 펴서 읽는 습관이 있어 먼지를 터는 이 작업은 아마도 두어달 걸릴 것입니다. 지난 주 정리 중 오랫만에 '아주 철학적인 오후'라는 동화집 속에 수록된 롤란드 퀴블러의 '네 갈래 길'을 다시 읽었습니다. 바다를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인 소녀가 집을 나와 바다를 향하던 중 네 갈래의 길을 만나는데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몰라 망설이다 결국엔 바다에 가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소녀는 노인이 되도록 긴 세월 동안 네 갈래의 길을 가 보았지만 길에 대한 확신이 없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되돌아 오곤 했는데 알고보니 네 갈래 길 어느 곳으로 가도 바다가 나오는 것이었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백발이 된 노인이어서 다시 갈 수 없었습니다. 말과 혀로만 하고 행함이 없어 진리에 다다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또 행함이 있을지라도 중도에 포기하여 바로 앞에서 꿈을 놓쳐버리는 건 아닌지요. 그녀는 아무 길도 선택하지 않았고 어떤 길도 끝까지 가보지 않아 평생 꿈꾸던 바다에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늙고 힘없는 그녀는 중얼거립니다. "아무 길이나 골라 끝까지 갔더라면…" .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도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어 인생이 허망하다고 느껴진다면, 새해엔 그 길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걸어가시길 빕니다. 길 되신 주님께서 반드시 함께 해주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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