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린 편지

가슴 시린 편지

[ 문화 ] 성탄 수필

김훈 장로
2014년 12월 16일(화) 15:42

"사랑하는 아버지, 늘 아빠라고 부르다가 아버지라고 부르려니 왠지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래도 이제는 아버지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저는 몸 건강히 잘 있습니다. 이제는 다섯 시 반이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밥도 남기지 않고 잘 먹고 있습니다…"

꼭 10년 전인 2004년 성탄절 무렵, 군에 간 아들에게서 처음 받은 편지를 읽으며 가슴 한구석이 시려왔다. 마냥 어린 아이로만 생각했는데 이제 제법 의젓한 군인 아저씨의 모습이 편지 군데군데 묻어났다. 반갑고도 낯선 느낌은 비단 아들이 쓴 편지의 어색한 경어체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도록 애비인 난 아들과 마음 깊은 대화를 한 번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아들은 늘 엄마와만 이야기하고 난 그 뒷이야기를 아내를 통해 전해 듣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들은 편지에서 처음으로 나에게서 받은 상처 이야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었다. 그리고 그때는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고 바르게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으로 끝맺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엇이 그리 아들에게 상처가 되었을까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고2때 학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우연히 받게 되었다.

"아드님이 오늘 수업에 빠져서요…."

일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아들이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누르고 있던 감정이 폭발했다. 아들은 제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는 나와의 대화를 일절 거부했다. 몇 차례 문을 열라는 내 고함에도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앞 베란다 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주먹으로 아들을 가격했다. 아들도 반사적으로 나를 공격했다. 거친 몸싸움 뒤에 아들의 흐느낌이 날 멈칫하게 했다.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가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이미 많이 늦어버린 것을 직감했다. 다음날 학교에 간 아들은 새벽이 되도록 귀가하지 않았다.

그 후 아들과의 관계회복은 영 어려웠다. 나도 아들도 한 공간에서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과의 어색한 사이를 오랫동안 방기했다.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음부터 화를 폭발하고 손찌검을 한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지만 난 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 아들이 제대 후 경제력을 잃은 아비의 도움없이 제 힘으로 대학을 마치고 취직한 후 결혼해 가정을 꾸린 지 만 3년 만에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아빠, 윤주가 아기 가졌어요".

아들은 전화통화 대신 카톡으로 아주 짧게 지가 애비가 된다는 소식과, 내가 자동으로 할애비가 된다는 소식을 동시에 전해왔다. 단순히 기쁘다는 감정이 아닌 전율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그것이 작년 성탄절 이브의 일이다.

내 아들의딸은 올해 9월 1일에 태어났다. 난 당당히 할애비의 자격으로 손녀의 이름을 지었다. 연못 지池, 옥돌 우玗 내 손녀딸의 이름이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여러 개의 공간이 있고, 숨통을 틀 수 있는 창문이 있다. 여러 일로 힘들면서도 그럭저럭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은 저쪽 생각으로 이쪽 생각을 잊고, 또 이쪽 생각으로 저쪽 생각을 틀어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열린다. 주님은 하나의 문이 닫히면 열 개의 다른 문을 열어 놓으시는 분이다.

주님이태어나시던 밤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보고 찾아왔다. 우리가 때로 밤하늘의 별을 헤는 이유도 그 밤의 박사들처럼 무언가 새로운 희망과 믿음에 대한 갈구 때문일 것이다. 내 가슴이 막막할 때, 끝이라 생각할 때 끝이 아니듯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빛은 주님이 나에게 건네는 푸르른 약속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하나님은 한 번도 쉽게 '이것이다, 여기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하고 보여주신 적이 없다. 길이 보이지 않고 답이 없어 그만 끈을 놓으려 하는 순간까지도 믿으면 그대로 된다는 소위 응답의 정체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쉽게 얻은 것은 오래 남지 못한다는 것을. 쉽게 얻은 기쁨은 빨리 사라지고, 힘겹게 얻은 것은 끝끝내 남아 훌륭한 스승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와 아들은 서먹한 세월 속에서도 각자 생각의 숨 쉴 공간 속에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런 나의 믿음과 희망은 10년 전 성탄절에 군에 간 아들이 조심스럽게 펼쳐 보여준 가슴 시린 편지로 시작되었다. 세상이 어둠 속에 잠길 때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 그 덕에 오늘도 가슴 벅차게, 가슴 벅차오르게 세상 속으로 걸어갈 힘을 얻는 것처럼.

김훈 장로
/ 한국교회연합 기획홍보실장ㆍ전 본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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