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정말 '종'입니까?

데스크창-정말 '종'입니까?

[ 데스크창 ]

안홍철 편집국장 hcahn@pckworld.com
2014년 07월 17일(목) 16:20

수 년 전 한 인터넷 쇼핑 몰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이 판매자 측의 실수로 '0'이 누락돼 수십만원으로 판매가격이 고지되면서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공방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판매자가 공시한 가격을 확인하고, 정상 주문하여 결제했으니, 이 거래는 정당하게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제품을 줘야 한다"는 주장과 "이 가격은 정상 가격이 아니다. 기본적인 가격에서 90% 할인된 가격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정상 주문으로 볼 수 없으니 이 거래는 취소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공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이에 대한 결과는 해프닝으로 처리됐지만 인터넷의 댓글 중 "잘못 올려진 가격도 판매자의 실수이니, 그것을 소비자가 알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무조건 그 가격에 팔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 주장대로 판매됐다면 소비자는 그야말로 횡재를 한 셈이겠지만, 반대로 해당 쇼핑몰의 물질적 손해는 물론 실수한 직원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요.
 
'소비자는 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소비자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생산자(판매자)의 자세에 대한 상징적인 구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실제로 소비자가 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소비자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보호받으면 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기업보다 소비자가 약자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소비자보호원 같은 기구도 있는 것이겠지요. 그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소비자를 왕이라 표현했으리라 짐작되어집니다.
 
만일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이런 실수를 했다면, 아마도 기업 이미지 차원에서 손실을 감수하면서 결제가 된 상품을 판매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해당 판매자가 영세한 사업자이거나, 한 발 더 나아가 나 자신 혹은 내 가족이 바로 그 가격을 잘못 올린 사람이라면 … 단지 아라비아 숫자 '0' 하나를 누락한 실수 때문에 직장에 수백, 수천만원의 금전적 피해를 입히고 직장에서 해고 위기에 빠지게 됐다면 … 그때도 같은 논리로 '무조건 그 가격에 팔아야 한다'는 주장을 수용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판매자의 실수로 입은 소비자의 손실이 어느정도 인지를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쟁점일 것입니다.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이란 판매자 실수로 인해 소비자가 쇼핑을 결정하는데 걸린 시간, 즉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10여 분 정도의 '시간적 손실'. 그리고 횡재에 대한 기대치가 무너진 '정신적 박탈감'일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수백, 수천만원을 보상해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타인의 실수로 인하여 그 당사자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 언제부터 이 사회가 이토록 각박해졌을까요?
 
지난 6월 4일 지방선거에 이어 이제 곧 7월 30일 보궐선거도 있게 됩니다. 후보 정치인들은 유세 중이거나 당선되었을 때, '국민(시민)의 종복(從僕)'이라는 말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남발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서 보면 그들은 결코 우리의 종복이나 심부름꾼이 아님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 지도자임을 자임하고 국민(시민)의 대표로 선출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어디 정치인 뿐이겠습니까? 교회 내에서도 직분이 지위인양 착각하고 말로는 섬기고 몸으로는 군림하는 이들. 한국교회가 새로워지려면 이 분들이 먼저 변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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