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산을 옮길만한 믿음

데스크창-산을 옮길만한 믿음

[ 데스크창 ]

안홍철 편집국장 hcahn@pckworld.com
2014년 03월 13일(목) 10:48


중국 북산에 우공(愚公)이라는 아흔 살 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의 집 앞에는 넓이가 칠백 리, 만 길 높이의 태행산과 왕옥산이 가로막고 있어 생활하는 데 무척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가족이 힘을 합쳐 두 산을 옮기자. 그러면 저 험한 산이 평지가 되어, 예주의 남쪽까지 곧장 길이 생겨 다니기에 편리할 것이다."
 
가족들은 당연히 반대했지요. 그러나 노인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다음 날부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우공과 아들, 손자가 지게에 흙을 지고 발해 바다에 갔다 버리고 돌아오면, 그 시간이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이웃 사람이 "이제 멀지 않아 죽을 당신인데 어찌 이런 무모한 짓을 합니까?"하고 말하자, "내가 죽으면 내 아들, 그가 죽으면 손자가 계속 할 것이오. 그동안 산은 깎여 나가면 나갔지 더 높아지지는 않을 테니 언젠간 길이 날 것 아니겠는가."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사람(愚公)이 산을 옮긴다(移山)'는 고사성어의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려주는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마부작침(摩斧作針)'도 있습니다. '도끼를 갈아(摩斧) 바늘을 만든다(作針)'는 말이죠. 서양 속담에 "산을 옮기는 사람은 작은 돌을 운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시작하니까요.
 
모든 위대한 일 이면에는 아주 작은 첫 시작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고치지 못하였는지 스승에게 묻습니다. 예수께서 "너희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답합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긴다'는 말씀은 살아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아무리 작아도 그것이 살아있고 온전한 믿음이라면 산을 옮길 만큼 놀라운 큰 권능을 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믿음에 생명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크기가 아니라 신실함에 있습니다. 우공처럼 미련할 만큼 무모하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신실함 말이죠.
 
유대인들에게 '산을 옮긴다'는 의미는 "힘든 일, 어려움, 곤란한 상황 등을 헤쳐나간다, 장애물을 제거한다"란 뜻으로 사용됩니다. 유대인들이 '위대한 선생'이라 부르는 랍비는 '산을 뽑아 버리는 사람'이란 뜻이 있다고 합니다. 믿음은 나의 신념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은 제자들에게 "기도 외는 이런 역사가 일어날 수 없다"고 강조하십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이죠.
 
사순절 기간, 묵상 중에 요즈음 한국교회는 늘 경건과 절제, 나눔과 섬김, 사랑과 희생 이 모든 것과 함께 하지만 경건의 의미, 섬김의 의미, 사랑과 희생의 참 뜻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생각했습니다. 늘 주님과 함께 했으나 … 주님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하고, 주님과 늘 깨어 있지 못하였던 제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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