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이야기] ③정교회 선교의 원칙

[세계교회 이야기] ③정교회 선교의 원칙

[ 선교 ]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4년 01월 27일(월) 15:53

'현지어 성경 번역부터'
선교하는 교회, '정교회'…전 세계 3억 5천만명 교인

정교회 신자들은 전 세계 200여 개국에 3억 5000만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신자를 가진 정교회는 그동안 우리에게 너무도 '미지의 세계'로 남겨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는 있다. 정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멸망한 이후 정교회는 무슬림들에 의해 핍박을 받다보니 사역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으며, 후일 제3의 로마를 주창하며 정교회의 새로운 본산으로 자리잡았던 러시아가 1917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으로 또 다시 공산주의자들에게 탄압을 받으면서 결국 '역사책에만 남아있는 기독교', '선교를 하지 않는 교회'라는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정교회는 역사책에만 기록된 기독교도 아닐뿐더러 선교를 게을리 했던 교회도 아니다. 우리나라에 정교회가 전해진 것만 봐도 선교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던 러시아 정교회 주교회의는 우여곡절 끝에 1900년 2월 17일 조선 선교회를 조직하고 대수도사제 흐리산프 콥스키 신부를 파송했다. 한국정교회의 초대 사제인 흐리산프 신부는 정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조선인들을 모아 교리학습을 시작했으며 이와 동시에 정교회 선교의 전통에 따라 한국어 예식서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십계명 등을 번역하며 교세를 확산해 나갔다. 현재 한국정교회에 속한 교인은 3500명 수준. 초대교회의 전통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교회로 알려진 정교회는 지금도 예배시간에는 전 세계 교회가 같은 성경구절을 봉독하고 똑같은 곡조의 성가를 부른다. 전통을 이어가는 이같은 특징들이야말로 정교회의 가장 큰 강점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1917년 이전까지 지리적으로 끊임없이 비기독교 민족들과 접촉하면서 '선교의 접촉점'을 만들어 왔다. 이 결과 러시아 정교회는 988년 러시아 제국이 정교회를 받아들인 직후부터 선교사들을 파송할 수 있었다. 14세기의 성 스테판 선교사는 현지어로 성서와 교리서를 번역한 뒤 복음을 전하는 정교회 선교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며, 15세기에 활동했던 성 트루폰은 평신도 선교사의 시초다. 이외에도 러시아 정교회의 선교 역사 속에는 알래스카와 동부 시베리아의 사도로 불리는 존 베니아미노프 선교사가 있으며, 1800년대 말 일본에서 사역했던 니콜라스 카사트킨 선교사도 선교사로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1912년 세상을 떠난 니콜라스 카사트킨 대주교는 일본에 266개의 교회와 3만 3천명의 신자를 남겼으며, 생전에 35명의 신부들과 22명의 부제들, 82명의 신학생을 세웠는데 이 모두가 일본인이었을 정도로 선교의 결실이 컸다.

알래스카와 동부 시베리아의 사도 존 베니아미노프 선교사는 1841년에 대동강 인근에서 40여 명의 조선인들에게 세례를 배풀었다는 사료가 발견되었을 만큼 사역의 범위가 넓었으며, 1870년 1월 25일 '정교회 선교회'(Orthodox Missionary Society)를 조직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후 전 세계 정교회는 사순절 첫번째 주일을 선교회를 위한 주일로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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