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아픔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데스크창-아픔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데스크창 ]

안홍철 기자 hcahn@pckworld.com
2013년 11월 04일(월) 18:39
개인적으로 원로 여류시인 김남조 선생을 좋아합니다. 우선 그의 시는 영성이 가득합니다. 신에 대한 사랑과 경건함이 구절 구절 묻어납니다. 그런가 하면 여류시인의 연세가 제 어머니와 같은 여든여섯이어서 더욱 푸근함과 친밀함을 느끼는 듯합니다. 여든여섯된 시인은 올해 17번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를 상재했습니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이후 정확히 60년 만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내가 아프다'고 심장이 말했으나 고요가 성숙되지 못해 그 음성 아슴했다 한참 후일에 '내가 아프다 아주 많이'라고 심장이 말할 때 고요가 성숙되었기에 이를 알아들었다 심장이 말한다 교향곡의 음표들처럼 한 곡의 장중한 음악 안에 심장은 화살에 꿰뚫린 아픔으로 녹아들어 저마다의 음계와 음색이 된다고 그러나 심연의 연주여서 고요해야만 들린다고 심장이 이런 말도 한다 그리움과 회한과 궁핍과 고통 등이 사람의 일상이며 이것이 바수어져 물 되고 증류수 되기까지 아프고 아프면서 삶의 예물로 바쳐진다고 그리고 삶은 진실로 이만한 가치라고."
 
시인은 진정한 아픔은 성숙해져야 들리고, 고요함 속에서만 들린다고 말합니다. 자기 성찰과 자기 구원을 노래하는 가운데 아픔도 축복이며 그 모든 것이 살아 있으므로 누리는 것임을 말합니다.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픔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아픔은 부정적이고 불쾌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 몸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다쳤을 때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문제는 아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프게 하는 것들에 있습니다. 오히려 아픔은 '살아 있음'의 상징이며, '살아야겠다'는 의지입니다. 아픔을 모르면 자칫 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건강을 잃어본 사람은 말합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아픔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타인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우리는 부딪치거나 넘어지면 아프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어줄 때와 주먹으로 때릴 때의 느낌과 아픔의 차이를 구별합니다. 아픔이란 감각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어느 정도의 힘을 가해야 상대를 쓰다듬는 것인지, 아프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파봐야 상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상대를 위로할 수 있습니다.
 
미국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면 텔레비전 오른쪽 위에 LIVE 라는 워터마크가 뜹니다. 녹화중계는, 이미 결과를 알기에 감동과 열정이 반감되지만 실황 중계는 LIVE 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제자들은 세례요한, 엘리야 등 현존하지 않는 과거 선지자들을 거명하며 녹화중계와 같은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고 베드로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LIVE 중계같은 대답을 합니다. 주님은 LIVE 중계를 보는 것과 같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고통을 겪으신 분입니다. 고통과 아픔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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