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歸村)하는 크리스찬들에게 고함

귀촌(歸村)하는 크리스찬들에게 고함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한경호 목사
2013년 07월 03일(수) 09:56

귀촌하여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측량과 집짓기이다. 어떤 귀촌인이 측량을 해보니 자기 땅인데 이웃 주민이 밭으로 갈아먹고 있었다. 뻘건 말뚝도 다 박아서 표시가 되었으니 내년이면 당연히 손을 안 대겠지 했는데 이듬해 봄이 오자 어김없이 트랙터로 그 땅을 갈았다. 화가 나서 따졌다. "왜 남의 땅을 갑니까?" 그 주민 왈 "땅이 어디 도망가나?" 결국 갈등이 불거졌고 그 귀촌인은 얼마 후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어떤 장로가 귀촌하여 지역의 농촌교회를 나갔다. 30명 내외의 작은 교회지만 역사는 제법된 교회였다. 목회자도 오랜 기간 성실하게 목회해 오고 있었으며 교인들도 교회생활을 잘 하고 있었다. 좀 익숙해지자 자기가 보기에 잘못돼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코치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재정 관계 일에 대하여 그랬다. 결국 목회자, 재정집사와 갈등이 발생했고 마침내 그 장로는 아예 그 마을을 떠나고 말았다.
 
2000년도 이후 귀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기독교인들도 많이 있다. 귀촌하면 낯선 농촌 주민들과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되며, 기독교인이면 농촌교회 목회자 및 교인들과도 맺게 된다. 그런데 이 새로운 관계 형성에서 실패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적응을 잘하여 만족하게 사는 분들도 있지만 상처를 주고받으며, 불편한 관계를 맺다가 급기야는 그곳을 떠나는 분들도 있다. 귀촌인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농촌 주민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존중하는 자세로 대해야 한다. 농촌은 도시와는 다른 문화와 정서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농민은 땅의 사람이고 도시인은 아스팔트의 사람이다. 귀촌인들은 경제력과 학력에서 농촌주민들보다 우월하다. 농촌주민을 무시하는 언사들이 부지부식 간에 드러난다. 농민들은 귀촌인에 대하여 두 가지 마음을 갖고 있다. 자신들보다 낫기에 무언가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동시에 '그래도 내가 여기 터줏대감인데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하는 마음도 있다. 겸손하게 잘 적응하면 앞의 마음이 발동하고 반대이면 뒤의 마음이 발동한다. 위의 첫 번째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막걸리라도 한 병 들고 가서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하고 "내년에는 제가 그 땅을 사용하겠습니다" 했으면 아무 탈없이 지나갈 일이었다. 법적 권리만 생각한 아스팔트인의 모습이다.
 
둘째, 농(農)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경제논리로 농(농업, 농민, 농촌)을 폄하하면 안 된다. 저들은 평생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고생하면서 노후 골병만 든 채 여러분을 먹여 살린 사람들이다. '농' 없이 여러분의 삶은 존재할 수 없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저들은 또 조상 대대로 마을을 일구고 가꾸며 살아왔으며, 마을 곳곳에는 저들의 피땀어린 정성이 배어 있다. 여러분은 돈과 법적권리만 가지고 그곳에 무임승차한 것이다.
 
셋째, 기독교인들 특히 도시 큰 교회에서 온 분들의 경우, 농촌의 작은 교회를 무시하면 안 된다. 처음에는 조용히 다니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목회자에게, 주민 교인들에게 이것저것 간섭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다닌 도시교회가 표준이다. 그것과 다르면 잘못된 것이다. 결국 갈등을 일으켜 교회를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귀촌인들은 인생 황혼기의 사람들이라 장로, 권사 등 항존직들도 많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인생을 정리하고 부족했던 점들을 반성하고 회개하면서 영적인 성숙을 위해 마음을 갈고 닦으며 정진할 때이다. 작은 교회지만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인데,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혈기를 부리고 분란을 일으킨다면 영적인 실패자가 될 공산이 크다. 안 그래도 어려운 농촌교회인데 기도로 뒷받침하고, 부족한 점은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다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한경호 목사 / 횡성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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