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북한선교가 중요한가?

왜 북한선교가 중요한가?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김회권 교수
2013년 05월 29일(수) 17:10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남북의 적대적 분단 상황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거의 유일한 냉전적 분단과 대결구도를 대표하던 우리 겨레의 역사에 한 때는 화해와 통일이라는 대변화의 물결이 몰려오는 듯하더니 다시 분단과 적대의 물결이 파도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환경 또한 남북한의 화해 및 협력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북한의 핵무장과 핵과 경제병진 정책은 직접적이고 당면한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결국 현실정치적으로 볼 때 남북한의 화해와 전면적 통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먼 걸음일 것이다. 다만 그 멀리 있는 완전 화해와 통일이 오기 전에 우리는 안정되고 덜 적대적인 분단체제를 만들어 유지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과정에서 제일 긴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역시 남북한의 상호이해와 대화노력일 것이다. 이 대화는 적의 형세를 탐지하거나 염탐하려는 대화가 아니라 상호적인 이해증진과 긴 과정의 연합과 일치를 준비하기 위한 점진적 신뢰쌓기 작업의 일환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남한과 북한 사이의 대화에는 적지 않은 장애물이 있다. 민족공조나 우리끼리식의 선언적인 구호로 해소할 수 없는 이질화된 교양, 문화, 가치관, 이데올로기 등이 우리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다. 특히 남한 사회의 여론주도세력 중 하나인 복음주의적 기독교회는 북한사회를 유사종교집단으로 파악하고 북한 인민의 정신을 개조하거나 의식을 세척하지 않는 한 북한 동포를 포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무신론이요 더더욱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은 세속화된 국가종교 형태를 띠고 있기에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주창하는 남한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 커다란 장애가 발생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운명론에 빠져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남북한에게 공히 타당하게 용인될만한 자유롭고 정의로운, 평등과 자유, 개인과 공동체가 거룩하게 길항하는 '이상화된 대한민국'에 남북한 지방정부가 각각 발전적으로 흡수되기를 희망한다. 남한이나 북한이 현재 모습으로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흡수할 역량이 없다. 훨씬 더 공의롭고 자유로운 이상화된 대한민국이 나타나서 남북한 각각을 거룩하게 흡수해야 한다.
 
주전 8세기 예언자 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한 후 남유다로 대거 이주해 오는 북왕국의 유민들의 이주사태를 보면서 히스기야 왕에게 거룩한 흡수통일 방안을 제시한다. 당시의 '현실적' 유다 왕국으로서는 북지파의 남은 자들을 흡수통일할 수 있는 데 역부족임을 지적한 이사야는 공평과 정의로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렸던 다윗왕국의 기상을 회복함으로써 북왕국의 난민들을 거룩하게 흡수병합하라고 권고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한 사회에 공평과 정의, 인애와 우애가 충만할 때(시 89:11-14; 사 32:16-20; 암 5:24), 그리고 남한의 거룩한 변화를 교회가 주도할 때 북한동포들과 창조적으로 접목될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이 그토록 강조하는 기층노동자와 농민 등 하층 계급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할 때 북녘동포들을 거룩하게 흡수할 수 있다. 남한 또한 창조적 해체를 거쳐 공산주의자보다 더 자애롭고 정의롭게 노동자들을 대우해주는 사회로 거듭태어나야 한다. 정의롭고 자애로운 대한민국이 북한 공산주의자들까지도 흡수통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긴 화해와 통일을 완성하기 위해 남한은 북한에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부단히 고취하여야 한다.

김회권 교수 / 숭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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