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의 선교 유예' 진실은 무엇인가?

'WCC의 선교 유예' 진실은 무엇인가?

[ 선교 ]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3년 05월 10일(금) 16:25
"WCC 반대의 허구성을 해부한다" ④  
 
파송교회와 현지교회, 평등관계로 선교
아프리카 교회가 요청한 "자생력 위해 잠시 유예 기간 달라"가 와전
실제 결정되지 않았고, '선교의 동반자 관계' 정책으로 발전
 
세계교회협의회(WCC)는 1900년대 초반 세계 각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던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에딘버러 선교대회에 모였던 선교사들은 '계속위원회'를 조직해 선교대회의 논의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고, 그 결과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IMC)가 조직됐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 서구교회들은 봉사와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192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삶과 일'(Life and Work)을 조직했고, 1927년엔 교리적인 일치를 논의하기 위해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를 조직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삶과 일 위원회와 신앙과 직제 위원회는 194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WCC를 창립했으며, WCC와 긴밀한 협력을 해 오던 IMC는 1961년 WCC와 통합을 결정했다. 당시 IMC는 WCC와 통합하면서 선교적 교회(missionary church)를 강조했고 이는 이후 선교가 비단 선교단체의 고유업무 영역을 넘어 교회의 본질이라는 정서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 IMC는 현재 WCC 안에서 '세계선교와 전도위원회(CWME)'로 자리잡고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현재 본교단 소속의 금주섭 목사가 CWME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선교에 뿌리를 두고 있고 현재도 선교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WCC를 둘러싸고 '반선교 단체다'라는 오해가 생긴 이유는 뭘까. 서울장신대 정병준 교수는 "WCC가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와 함께 새로운 상황화 선교에 큰 집중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19~20세기 초반에 행해지던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는 영혼구원과 교회개척에 집중했지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선교는 서구중심주의, 선교지 문화에 대한 무시, 식민지 침략과 선교의 동맹이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이로 인해 전통적 의미의 선교를 반성하고 새로운 선교론이 제기된 것이다"면서, 상황화 선교가 부각된 이유를 설명했다.
 
'WCC가 반선교 단체다'라는 잘못된 주장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아프리카 교회들의 한 호소에서부터였다. 1971년 동아프리카 장로교회 총무인 존 가투(John Gatu)는 "서구 선교사들의 지도력과 재정지원이 현지교회의 자립과 자치를 막고 있다"면서,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해 선교사와 토착교회가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위해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5년 동안 철수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선교 모라토리엄'(Moratorium)으로 알려진 존 가투의 발언 요지는 전 세계 교회들이 선교를 일시에 중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교회들의 자생력 확대를 위해 일정한 시간 동안 서구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선교를 유예해 달라는 것이 골자였다.
 
이후 1973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에서는 상황화와 통전적 선교와 함께 선교유예의 문제를 논의했지만 최종적으로 아프리카 교회가 요청했던 '아프리카 선교유예'는 결정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선교단체들에게 선교사 철수란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었고, 현지교회 지도자들도 재정적 지원이 중단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이 같은 이유들로 인해 '선교 유예'가 실제로 결정되지는 못했고 다만 WCC는 선교유예 대신 파송교회와 현지교회가 평등 관계로 선교한다는 '선교의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후 '선교의 동반자 관계'라는 정책기조는 현지교회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선교학적 진보를 가져오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교회들의 선교 유예 요청에 대해 WCC 중앙위원 박성원 교수(영남신대)는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역사상 드물게 교회성장과 자립성을 동시에 이룩한 교회인데 여기에는 한국 선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네비우스 선교방식이 큰 영향을 끼쳤다"면서, "아프리카 교회가 자치적, 자립적, 자전적 교회가 되기 위한 몸부림으로 선교 모라토리엄을 선포한 것은 바로 자치와 자립, 자전을 원칙으로 세운 네비우스 선교방식의 아프리카 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당시 아프리카 교회들의 호소는 선교중지나 포기가 아니라 더 좋은 선교를 하기 위함이었다"라고 덧붙이며 WCC가 선교를 부정했다는 일부의 오해는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WCC가 선교지에서 복음전파를 부정하고 있다는 이른바 '개종 전도 금지'도 내용을 살펴보면 '복음전파 부정'과는 관계가 없다. 무엇보다 개종(Proselytism)에 대한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주류 교회들은 '개종'에 대해 강제적인 행위가 전제된 식민지적 선교의 전형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개종'은 정당한 절차를 통한 건강한 복음전파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칭하는 폭력적인 개념인 셈이다. 이미 1997년 WCC는 'Towards common witness'라는 문서를 통해 "가톨릭과 정교회를 비롯해 이미 개신교 신앙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개종의 문제가 교회들을 분열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고 에큐메니칼 운동의 위기를 스스로 자초하는 일"이라고 경계한 바 있다. 당시 문서에서는 '자기 교회'만 진정한 교회이고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미 기독교 신앙이 있는 이들을 재세례하는 행위를 비롯해서 기존 교인을 물질과 교육의 기회 등을 제공하며 유인하는 행위들이 개종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건강한 선교를 위해 모였던 1910년 에딘버러 선교대회에 뿌리를 두고 1948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선교를 위해 고민해 온 WCC를 두고 '반선교단체'라는 주장을 일삼는 것은 결국 무지에서 오는 오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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