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부활의 노래를 다시 부르자!

교회여, 부활의 노래를 다시 부르자!

[ 논설위원 칼럼 ]

조재호 목사
2013년 03월 19일(화) 15:24

이제 '추운 겨울'이라는 높은 언덕을 넘어 따뜻한 봄이 다 도착했다. 자연과 세상은 기후의 변화에 민감하고 그래서 기온의 상승에 따라 '봄'이라고 이름 붙였다. 찬란한 햇볕 아래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누군가는 흙 속에 씨앗을 묻지 않고는 진정한 봄이 아니라고 했다. 진정한 봄은 단순한 기후의 변화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 주님의 부활이 있다. 겨울과 같은 냉혹한 십자가 너머에 생명과 희망을 불어 일으키는 하늘의 소중한 힘, 부활이 있다.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요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많은 시와 성서적 배경의 그림과 삽화들을 남겼다. 그를 신비주의자라고 하는 이유는 어릴 적, 자기 집 창가에서 천사와 이야기도 나누고 동네 언덕에 올라 높푸른 하늘을 매만지기도 했다는 신비적 체험과 환상들이 그의 시와 그림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 속에서 다른 세계를 보고, 현재와 영원을 연결하는 순수 정신으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속에 무한을 쥐고, 한 토막 시간 속에 영원을 보라." 그리스도인은 흘러가는 시간의 단면을 잘라서 벽돌같이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단편적으로 살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미분적 삶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 그리고 여기와 저기가 연결된 연속적이고 영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의 기도를 받아 냈으나 형 에서의 증오와 살기에 위협을 느낀 야곱은, 급히 작은 짐 하나 꾸려 메고 정처없이 집을 나고서 만다. 외롭고 힘든 세월이 펼쳐질 것이다. 집을 나선 첫 날 밤, 어느 황량한 들판에서 추위와 공포 속에 새우잠을 자고 있던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이른바 벧엘의 체험이다. 그는 사다리의 꿈을 통해, 자기가 누워 있던 이 거친 땅과 하늘이 상관없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위대한 영적 체험이었다. 그 사다리는 오늘 우리가 다시 경험해야 하는 십자가와 부활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과 저 하늘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현재의 맞닥뜨린 고난과 다가오고 있는 희망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는 승리의 부활과 연결되어 있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으면 부활은 의미가 상실된 형식이요, 생명의 부활이 전제되지 않은 십자가는 단순히 참기 힘든 고통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십자가는 미래의 부활을 잉태하고, 여기의 고난은 저기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노래를 듣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주님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봄은 주님의 십자가를 다시 봄으로 진정으로 찬란한 봄이 된다. 십자가 너머에 생명과 희망의 노래, 우리 주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작은 이들의 벗으로 살아간다. 주님은 작은 이들이 계절의 봄을 넘어서서 인생의 봄을 만날 수 있도록 찾아 오셨다. 그리고 그 길이 십자가와 부활임을 보여주셨다. 한국교회여, 이 봄에 작은 이들과 함께 부활의 노래를 부르자.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며 생명 기운 가득한 희망의 노래를 다시 힘차게 부르자.

조재호 목사 / 고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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